[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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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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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자연 이황, 그림 제공 포털아트
추억 속의 자연 이황, 그림 제공 포털아트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곳을 여행합니다. 자발적인 여행도 있고 본의 아닌 여행도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활동의 모든 과정이 여행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견문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시종일관 감싸는 것은 말없는 풍경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도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변 풍경과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경치는 경치,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과 경치를 분리시키면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경치가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내가 경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여행은 무의미해집니다. 집에 앉아서 사진으로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으로 직접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경치와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경치는 결코 풍경이 될 수 없습니다.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마음의 풍경이 되고 추억의 터전이 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된 추억이 대부분 풍경과 함께 떠오르는 이유가 달리 무엇일까요.

젊은 날, 사람들은 풍경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여행을 가서도 자신에게 집중하고, 풍경을 보면서도 내면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강한 게 젊음의 특징입니다. 나이가 들면 비로소 풍경이 보입니다. 젊은 날 자신을 사로잡았던 에너지가 소진되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자연스럽게 바깥 풍경이 내다보입니다. 나의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마음이 눈을 뜰 때 사람은 자신을 에워싼 풍경 중에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합니다. ‘나’가 아니라 ‘남’이라는 이름의 풍경. 나밖에 보지 못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비로소 남이 보입니다.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움직임은 변화무쌍한 우주의 춤입니다. 바람과 구름과 파도 같은 자연도 움직이지만 사람의 어우러짐은 가장 아름다운 율동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면 천상의 아름다움처럼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은 풍경의 일부일 뿐입니다. 자신이 풍경의 중심이라는 자만심과 욕망이 두드러지면 그 즉시 풍경은 스러집니다. 풍경이 스러진 자리에서 갈등과 쟁투, 전쟁과 살상이 자행됩니다. 자신이 풍경의 일부라는 걸 자각할 때 자연으로서의 풍경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사람은 풍경의 일부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풍경의 일부로 세상을 살다가 풍경의 일부로 스러집니다. 모든 풍경이 나로부터 출발하니 내가 풍경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내가 나의 풍경에 제대로 눈뜨면 나와 남, 세상과 우주의 풍경이 하나라는 걸 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더는 풍경을 보러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앉은자리에서도 우주 만물의 하나 됨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풍경인 그대, 지금 어느 곳에 어떤 형상으로 머물고 있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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