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우리는 언제 악어처럼 살 수 있을까요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한밤중의 야구경기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닥 외줄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이 네 사람은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요. 게다가 네 사람은 포식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악어를 가운데 자리에 앉혀 두고 있네요.

이들이 구성하고 있는 놀라움은 또 있습니다. 이들은 흡사 도로경계석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긴장감 없이 느긋하게 외줄 타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외줄 타기 기량이 대단히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정말 이상한 것은 이처럼 난도가 높은 공연을 연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람석 벤치는 텅 비어 있습니다.

강렬한 조명등이 이들을 비춰 주고 있습니다만 개미 새끼 한 마리일지언정 구경꾼은 없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과 악어의 표정은 우직해 보일 만큼 편안하고 초연해 보입니다. 구경꾼이 있으나 없으나 전혀 신경 쓰일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 표정에서 역력하게 묻어납니다.

게다가 이빨을 쑤시며 제복 입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악어는 자신의 꼬리를 곁의 노파가 밟고 있는데도 전혀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로 추락하면 생명을 담보해야 할 만큼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공포심 따위는 읽을 수 없고, 서로의 말을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설득이란 혀나 눈에 있지 않고 귀에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자신이 거둔 성공에 대해 남들이 눈여겨봐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 수다스럽게 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그 성과물을 남의 코앞에 들이대고 흔들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한경쟁시대의 소용돌이에 부대끼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내 자신을 지탱해 줄 뿐 아니라 돋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어떤 방법으로 공격받을 것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때로는 배리고, 야박하고, 좀스럽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더라도 세상을 향해 쉴 새 없이 잽을 던지는 것입니다. 내 존재를 세상이 잊어버릴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것에서 의혹과 거짓의 단서가 발붙이기 시작합니다. 남이 거둔 성공에 대하여,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는 척하거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 마지않습니다. 우리는 언제 관객 없는 외줄 타기 공연에서도 태연하게 이빨을 쑤실 수 있는 악어와 같은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언제 악어처럼 누가 지켜보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일에 묵묵히 몰입할 수 있을까요.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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