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자유를 누려도 살려달라는…

  • 입력 2008년 4월 5일 02시 55분


우애가 깊은 개구쟁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오후, 형제는 집 앞에 있는 늪으로 나갔습니다. 그곳 갈대밭 속에는 고기잡이로 한 가족의 궁핍한 생계를 유지해 오는 아버지의 주낙배 한 척이 매어져 있었습니다.

형제는 몰래 주낙배에 올랐습니다. 평소 형제는 가난에 찌들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늪가의 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형제는 기운차게 노를 저어 넓은 강으로 나아갔고, 강 좌우의 단구들도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습니다.

형제는 내친김에 바다와 마주치는 강 하구까지 가기로 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배를 계속해서 바다 쪽으로 떠밀어 주었습니다. 형제는 난생처음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수평선만 바라보일 뿐 떠나온 육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배가 고파 왔습니다. 그러나 굶어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입니다. 마침 포식자인 범고래들의 사냥에 쫓기던 고등어 떼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무작정 주낙배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배를 채운 형제는 다시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들은 흔히 말하듯이,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배는 의식이 몽롱한 형제를 싣고 바다 위를 기세 좋게 미끄러져 갔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맞닿은 곳에 이르렀을 때, 형제들 앞에는 새로운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성가신 풍랑이나 태풍도 없었고, 작은 배를 위협하는 크나큰 선박도 없었습니다. 오직 형제가 타고 있는 주낙배 한 척만이 넓은 구름바다 위를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원해 마지않던 자유가 끝없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 머리 위로 바라보이는 새로운 하늘에는 언젠가 보았던 물결치는 강이 있었고, 때로는 차량이 줄지어 다니며, 상가에는 휘황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형제는 잊고 있었던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늪가에서 지저귀던 새소리. 강물 위에 부서지던 붉은 저녁노을. 봇도랑에서 꼬리치며 헤엄치던 송사리 떼. 딱정벌레. 말똥구리. 바위 틈의 너구리. 냇가의 수달. 저녁 먹으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쉰 목소리. 주낙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던 남루한 옷의 아버지 모습. 추녀 끝에 기대선 굴뚝에서 솟아올라 흩어지던 저녁연기. 신발장에서 풍기던 구린내.

늪가의 집에서 살 적에는 사소하고 하찮게만 여기던 것들이 지금은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집을 떠나온 것이 10년이나 지났고,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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