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우리 삶은 고비사막 한가운데를 …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사막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친 모래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그 세력이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하룻밤 사이에 커다란 모래산을 일 같잖게 들어올렸다 내려놓았다 합니다. 바람 속을 뚫고 흩날리는 모래가 볼에 닿으면 그 고통은 비수로 긋는 듯합니다.

회오리치는 바람에 시야까지 흐릿하고, 어깨와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걷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혹독한 시련을 잠시 피하기 위해 나무 그늘을 찾거나 찌그러진 의자라도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모래 언덕뿐인 황야 어디에도 안식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갈증은 극도에 달해 가슴은 막히고 발걸음은 지쳐 곧장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모래벌판 곳곳에는 살인거미와 전갈, 앙칼진 사막도마뱀이 득실거리고,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돋아난 풀포기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어 범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아시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은 책에서나 나오는 말뿐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려 달라고 고함쳐 보았자, 사막 한복판이기 때문에 메아리조차 없습니다. 눈앞에는 난데없는 신기루만 떠올라 오히려 사람의 목숨이 덧없음을 조롱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치명적인 상황들이 엄습하기 때문에 내 생명을 담보한다 해도 이렇다 할 희망을 찾기란 그야말로 모래벌판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낮이면 검붉은 태양이 솟아 나를 불태우려 하고 밤이면 혹한이 닥쳐 뼛속까지 도려내려 합니다. 도대체 바늘구멍 같은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금까지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가슴속 깊이 간직했던 꿈이었습니다. 꿈은 한낱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식탁 위에 밥그릇이 놓여 있듯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그것만 살아 간직한다면, 나는 기쁘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내 영혼과 살과 뼈를 강건하게 지탱시켜 준다는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요. 나는 낮의 모래바람과 밤의 추위를 차단하기 위해 머리에 터번까지 겹겹이 둘렀습니다. 그런데 그 터번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꿈이 나에게 이렇게 귀띔해 줍니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 걸어라. 너를 곁부축해 줄 오랜 친구가 여기 있지 않느냐.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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