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외로움의 키도 혼자 두면 웃자랍니다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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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짝이 갖추어져야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그러나 외로움 한 가지만은 혼자 있을 때만 키가 자라날 뿐, 둘이 있을 때는 자라지 않습니다. 이 외로움은 너무나 오랫동안 짝이 없이 혼자 지내왔습니다. 창밖에 있는 나팔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웃자라서 조만간 창문을 비집고 나가 외벽을 타고 지붕 위까지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불쾌하고 따가운 땡볕에 노출되어 메말라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외로움은 또 다른 외로움과 짝을 이루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그의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대형 공사장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지상 100m 높이까지 아스라하게 올라가 쳐다보기에도 현기증 나는 골리앗 크레인이 있고, 조그만 조종실 안에는 40대 후반의 사나이가 언제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그 사내를 찾아가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사내는 그의 말을 경청하긴 하였으나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드높은 조종실에서 두 달 동안이나 혼자 지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마침 오늘이 지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그곳을 떠나 사방이 끝 간 데 없이 트인 들녘 한가운데에 저 혼자 서 있는 미루나무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미루나무 역시 외로움이 바라던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자기가 비쭉하니 웃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신의 가지가 창공으로 더욱 뻗어 학이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자면 앞으로 몇백 년은 더 자라야 하겠다는 포부를 단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로움은 실망하지 않고 또다시 삼라만상이 깊이 잠든 겨울밤, 오전 2시를 타종하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찾아갔습니다. 괘종시계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어두운 대청마루를 밤새껏 혼자 지키고 있어 무척 외로워 보이겠지만, 매 시간 놓치지 않고 타종을 해야 하는 무거운 책무 때문에 짝을 찾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해발 4000m나 되는 안데스 산맥 능선 위를 혼자 날고 있는 독수리까지 찾아가 만났으나 모두들 그럴싸한 명분과 핑계를 대고 그와 짝하기를 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외로움은 그 후에도 무려 3년 동안이나 짝을 찾아 헤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지치고 허기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척한 몰골을 거울에 비춰 보았습니다. 그 순간 외로움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가 3년 동안 짝을 찾아 지구촌 구석구석을 뒤지며 동분서주하는 동안 외로움의 키꼴은 3년 전 집을 나섰을 때와 비교해서 단 한 치도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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