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가장 그리운 것은…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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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리운 것은

열두 살 시절의 산골마을입니다

산골에서 자란 것을 창피스러운 일로 알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말을 하면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이 신기한 듯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버스에서는 말하기를 단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지금의 나를 구성해 준 절대적인 자산이 산골에서 소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자란 시골 마을은 앞산에서 장대를 내밀면 뒷산 등성이에 걸릴 정도로 깊은 산골이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만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5학년이 되기까지 60명 정원에 40등 안쪽의 성적을 거둔 적이 없었으니까요. 열등생이 감수해야 하는 갖가지 체벌과 창피를 간단없이 겪으면서도 나는 뻔뻔스럽게 노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이른 봄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마을 뒷길에 있는 감나무 아래로 달려가 감꽃을 따먹고 낮에는 앞산으로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먹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봄에는 꽃만 먹으며 자랐습니다. 여름이 되면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시냇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모래무지나 송사리 떼를 쫓다가 봇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습니다. 큰 아이들이 천렵을 하면 종다래끼를 들고 뒤따라 다니며 해지는 줄 몰랐습니다.

배가 고프면 갯가의 채소밭에서 무를 뽑아 배를 채웠습니다. 밤이면 원두막에 숨어들어 수박과 참외를 내 것처럼 훔쳐 먹기도 했습니다. 갈아입은 옷을 더럽혀 걸레로 만들었다고 매일 어머니에게 똥칠 막대기로 매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웃집 돌담 밑에 쭈그려 앉아 어머니가 듣고 가슴 아파 하시라고 일부러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과수원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을에 잔칫날이 있으면 그 집 주변에서 또한 떠나지 않았으며, 아무 밭에나 들어가 감자와 고구마를 캐 먹었습니다. 학교에 등교하는 일을 잊어먹기 일쑤여서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겨울이 되면 굴렁쇠를 굴리고, 얼어 버린 냇가로 가서 썰매를 지치고, 눈 내린 밤이 되면 남의 초가집 추녀를 뒤져 참새를 잡아 구워 먹었습니다. 그리고 감꽃을 따먹을 봄이 오기를 뜨거운 구들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기다렸습니다.

그 열 살 전후의 산골 생활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진흙탕 위에서 뒹굴며 놀았던 것밖에는 정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흔 살을 바로 코앞에 둔 지금, 나는 이처럼 무사하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열두 살 시절의 고향 마을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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