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25>평화의 얼굴

  • 입력 2008년 2월 13일 02시 50분


《“양심은 누구나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는 거울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적 감각과 관련 있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윤리나 도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각자 나름의 판단과 행동 기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스스로 자신을 그 거울에 비춰 보았을 때 떳떳하다면 그것은 ‘a good conscience’입니다.”

-장석주 시인 추천》

인정하자. 집단에서 ‘다수(多數)’ 의견이 중시되는 건 당연하다. 많은 이가 가고자 하면 따라야 하며, 소수보단 다수가 행복한 게 이익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도 백성이 주인 된다는, 즉 ‘Power to the people’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게 소수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적은 수라도 자유와 권익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간 민주주의 사회는 평등이란 미명 아래 타자(他者)를 소외했다”는 자크 랑시에르의 지적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을 감싸 안을 때 민주주의도 진정한 한 발짝을 내디딜 것이다.

‘평화의 얼굴’은 그런 의미에서 그 ‘한 발짝’을 위한 외침이다. 장석주 시인은 “양지와 음지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음지를 비추는 책”이라 평가하며 “대통령 당선인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갖길 기대하는 뜻”에서 이 책을 추천했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한 소수는 난감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이슈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수이긴 하나 연민의 시선도 쉽게 허용치 않는 사각지대. 바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신성불가침이다. 한 가수는 징집을 피하려 국적을 포기했다 공항에서 되돌아가야 했고, 병역 비리 한 방이면 어떤 권위도 무너진다. ‘남들도 다 하는 국방의 의무니깐.’ 군대 안 간 남성은 여성도 놀려댄다.

하지만 경북대 법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렇기에 더욱 논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병역 거부는 이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 우리 모두는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 전쟁이 분쟁 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에서 시작했으나 이제는 ‘나’의 문제를 고민할 차례입니다.”

저자의 견해에서 보면 병역 거부는 전적으로 개인 선택에 달렸다. 세상을 하나의 잣대로 논할 수 없듯 개인 신념과 기준도 하나일 수 없다. 평화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 평화를 위해 총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존재할 수 있다.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 어떤 양심을 선택하는가는 개인의 문제다.

그렇다고 저자가 전적으로 병역을 거부하자는 뜻은 아니다. ‘양극단 선택’의 논리야말로 저자가 가장 지적하고픈 시대적 편견이다. 이쪽 아니면 저쪽 말고도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저자는 대체복무로 제3, 제4의 길을 찾자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 주장에 100% 동의하긴 심정적으로 쉽지 않다. 왜 그렇게 한국인들이 병역 문제에 민감한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상만사 ‘돈 없고 빽 없어’ 억울한 민초들의 심정. 그나마 군대마저 평등치 못하니 울분이 터진 것이다. 소수의 양심만큼이나 다수의 양심도 멍울져 있음을. 그걸 얼러 주지 못한 채 관용만 요구하기엔 갈 길이 아직 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