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청소년 심리]‘사이보그지만…’ 영군의 식욕부진증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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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마른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 문화적 추세는 여성들에게 날씬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및 강박관념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회는 청소년기 여학생을 거식증의 위험으로 이끌 우려가 있다.

거식증은 체중 증가를 지나치게 두려워해 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영양실조에 이를 정도로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증상이다. 이뇨제, 설사제 등과 같은 약물을 사용해 극단적인 체중조절 행동을 보이는 증상을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고도 한다.

정신분석학은 거식증의 원인으로 모녀 관계의 문제에 주목한다. 지나치게 강압적이거나 모든 일을 다 알아서 해 주는 엄마에게서 딸이 분리, 독립하는 과정에서 거식증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식사를 조절함으로써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려는 욕구와 자신의 자율성을 표현하는 현상이다. 거식 행동은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영군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사이보그라는 망상 때문에 음식을 거부한다. 여기에도 부모, 자녀 간의 문제가 담겨 있다.

딸의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딸을 안아 주고 품어 주지 못하는 어머니,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여 하루 종일 무만 갉아 먹는 할머니와 사는 영군. 그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란 망상에 빠진다. 할머니가 강제로 앰뷸런스에 실려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고, 엄마와 단둘이 지내면서 영군은 식사를 거부한다. “엄마, 나 사이보그인가 봐”라며 혼란스러워하는 딸에게 엄마는 “괜찮아, 사이보그라도…. 남들 모르게만 하면 돼. 엄마가 식당을 하는데 딸이 사이보그라면 누가 먹으러 오겠니?”라고 말한다.

영군은 세상과 고립된 채 할머니가 남기고 간 틀니를 끼고 무생물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세계에서 형광등, 라디오, 시계와만 소통한다. 영군은 스스로 사이보그라고 생각하여 전기로 자신의 몸을 충전하려고 하다가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같은 병원에 입원한 일순은 영군이 하듯이 사물에게 말을 걸면서 영군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사이보그라서 밥을 못 먹는다는 영군의 말에 일순은 “사이보그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영군의 말을 그대로 믿어 주고, 밥을 에너지로 전환해 주는 ‘라이스 메가트론’이라는 기계를 영군의 등에 거짓으로 장착해 준다. 영군이 ‘사이보그로서 자신의 존재의 비밀’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주치의가 “영군이가 사이보그였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공감해 주자 영군은 주치의가 건네준 음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음식 섭취는 따뜻한 정서적인 교류이다. 부모, 자녀 관계에서 볼 때 먹고 먹이는 일은 사랑을 주고 받는 것과 같은 행위다. 이 영화는 먹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와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서울대신민섭 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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