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토크]포도는 와인을 남기고, 와인은 ‘그라파’를 남긴다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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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로 만든 병이 고급스러운 이탈리아 그라파 ‘알렉산더 로즈’.
수공예로 만든 병이 고급스러운 이탈리아 그라파 ‘알렉산더 로즈’.
포도는 버릴 게 없다.

포도 열매를 압착해 와인을 만든 뒤 남은 포도껍질, 씨, 잔가지 등 찌꺼기를 ‘비나키아’라 부른다. 이를 발효시킨 후 구리 용기에 넣고 증기나 중탕 방식으로 가열해 증류하면 무색 증류액이 추출된다. 증류액을 술통에 넣고 장기간 숙성시키면 ‘그라파’가 만들어진다. 숙성시키는 술통에 따라 색이 다르다. 오크통은 호박색, 물푸레나무통은 무색이다. 그라파를 얻고 난 뒤 찌꺼기는 말려 이듬해 그라파 증류할 때 땔감으로 쓰고, 재는 포도밭의 비료로 이용한다.

그라파는 이탈리아 중부나 북부를 여행하면 와인만큼이나 자주 만날 수 있는 술로 일종의 ‘이탈리아 브랜디(brandy·와인을 증류해 만든 술)’다.

이 술의 달콤한 향에 빠져 와인 마시듯 마시면 금세 취한다. 알코올 도수가 39도 이상이기 때문이다. 60도가 넘는 그라파도 있다.

몇 개월의 기본 숙성만 거친 그라파는 비교적 차게 마시고, 1년 이상 숙성된 것은 섭씨 16∼18도에서 즐긴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그라파를 식후 소화를 돕기 위해 마신다. 특히 아오스타 지역에서는 ‘그롤라’라는 그라파를 이용한 음료로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 그라파, 에스프레소, 레몬 껍질, 계피 조각, 설탕을 함께 넣고 불을 붙인 뒤 설탕이 녹으면 따뜻하게 마신다.

그라파는 향이 좋아 요리에도 사용된다.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 코리아 이정은 실장은 “그라파에 과일을 절여 겨울까지 보관해 먹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이나 셔벗, 무스 등을 첨가해 향을 즐긴다”고 말했다.

포도 외의 과일로 그라파를 만들기도 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북부 알토아디제에서는 여러 과일로 그라파를 만든다. 당이 많은 복숭아 배 체리 살구 사과 모과 등의 씨를 제거하고 숙성시킨 후 당이 알코올로 변하면 증류한다.

▽잠깐!=증류액을 바로 병에 넣으면 ‘지오반네’, 오크통에서 6개월∼1년 숙성시키면 ‘인베키아타’란 이름이 붙는다. 또 향이 풍부한 포도품종으로 만들면 ‘지오반네 아로마티카’, 허브나 약초를 넣어 만들면 ‘아로마티자타’라 부른다. 그라파 가운데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청포도로 만든 ‘가라파 디 피콜리트’는 희소성으로 유명하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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