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16>강요된 침묵-억압과 폭력의 남성 지배문화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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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 때 한 집단에 대한 다른 집단의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어 왔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을 성별로 나누는 것의 타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존재가 생후 18개월까지의 유아 성장에 필수라고 말하거나, 출산이야말로 여성의 가장 큰 임무라고 말하는 사람은 문화적인 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것이 문화적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남성들은 열쇠구멍으로 여성을 몰래 훔쳐보았다. 몰래 훔쳐보는 남성은 여성을 철저히 대상화한다. 훔쳐보는 남자는 자신의 욕망과 시선에 따라 일방적으로 여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훔쳐보기는 환상이었고 불행의 씨앗이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성은 남성의 욕망과 시선을 벗어나기 일쑤였고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을 처벌하는 데 광분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훔쳐보기가 아닌 마주보기를 시도해야 할 때다. 서로 마주보기 위해 여성은 스스로를 표현할 언어를 찾아야 하며 남성은 일방적인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저자 레이노는 남성으로서 여성 훔쳐보기의 시선을 거두고 가부장제로 대변되는 남성 자신의 역사를 돌아본다.

레이노는 가부장제의 역사를 분리의 역사, 이분법의 역사로 파악한다. 가부장제는 남성과 여성의 분리뿐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분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그저 인간이었지만 그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만들어지는 순간 남자가 된다. 그리고 남자가 된 아담은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고 자신을 순수한 정신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분리의 다음 단계는 권력화이다. 분리된 여성과 남성은 차별화되고 계급화된다. 순수한 정신으로서의 남성이 무절제한 살덩어리로서의 여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가 된다는 것이다. 남성의 권력화는 성관계에 있어서 특히 극명하게 나타난다. 남성은 성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이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감흥을 만끽하고자 하며 이는 강간이라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저자는 과감히 이분법을 초월할 것을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이분법 자체를 철폐해야 하며 그 같은 분리를 만들어냈으며 부당한 권력의 근원인 ‘남성’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순순히 ‘남성’을 포기할 것인가? 저자는 남성이 진정한 성적 쾌감에 이르고자 한다면 ‘남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본다. 책에 따르면 가부장제하에서의 남성은 진정한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없다.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남성은 지배의 욕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배의 욕구에 휩싸인 남성은 성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육체적 쾌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페니스가 여성을 어떻게 ‘죽여주었는가’ 혹은 자신의 페니스가 여성을 지배하기에 얼마나 강인한 도구인가를 확인하는 데 집착한다.

필자는 레이노의 명쾌하고 날카로운 주장에 연방 감탄하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내내 필자의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 있었다. 정말 성적 차이를 없애면 쾌감에 이를 수 있을까? 서로 마주보기 위해서 우리는 성적 이분법을 철폐해야 하는 것일까? 차이의 문제와 차별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닐까? 독자들도 함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현재 가톨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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