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들여다보기 20선]<15>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여자로 길…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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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팔다리를 잃어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면, 오직 입에 물고 있는 막대기 하나로만 뭔가 표현할 수 있다면, 그럼 난 인간이 아닌가요? 마찬가지로 남근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요? 다리 사이에 그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는 것처럼, 수술이다 호르몬이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나요? (…) 만일 어떤 여자가 사고로 가슴을 잃었다면 남자로 만들어야 하나요? 그렇게 하면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가요?” ―본문 중에서》

독일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어린 시절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컸다. 그의 어머니는 릴케에게 치마를 입혔고 소꿉과 인형을 갖고 놀게 했다. 결국 이것은 릴케에게 두고두고 가슴속의 큰 상처로 남았다. 그는 틈만 나면 어린 날에 겪었던 그 ‘끔찍스러운 악몽’을 되뇌곤 했다. 물론 릴케는 그 아픔을 ‘빛나는 보석’으로 훌륭하게 빚어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 모진 흉터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의 내용이 그렇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어린 시절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다. 이 책은 바로 한 인간의 끈질긴 ‘성 정체성 찾기’의 발자취다. 그것은 의료 권력의 폭력에 맞선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건은 1966년 캐나다 위니펙 시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다. 일란성 쌍둥이 중 형 브루스가 생후 8개월에 포경수술을 받다가 그만 남근을 잃은 것. 부모는 한동안 아들이 성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고민한다. 그러다 결국 아이를 존스 홉킨스병원의 유명한 성 전문가 존 머니 박사에게 데려가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시킨다. 머니 박사는 ‘성은 후천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의사. 부모는 아들의 이름도 여자이름인 ‘브렌다’로 바꿨다. 머니 박사의 지시에 따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주입하고 정신적 치료도 병행했다.

그러나 브렌다는 처음부터 여자이기를 거부했다. 청소, 결혼, 화장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늘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성 쌓기, 눈싸움, 군대놀이를 하며 놀았다. 소변도 서서 해결했다. 자신을 실험대상으로만 여기는 머니 박사에게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병원에 갈 때면 디즈니랜드 구경을 미끼로 던져야 할 정도였다. 결국 브렌다는 “병원에 가면 죽어버리겠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브렌다가 14세 되던 해. 아버지는 마침내 브렌다에게 두 손을 들었다. 그동안 비밀에 부쳤던 ‘포경수술 사건’도 브렌다에게 털어놓았다. 성의 선택권을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브렌다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안도감’이었다. 결코 자신은 돌연변이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수술을 통해 원래의 성을 찾았다. 이름도 다윗의 영어식 표기인 ‘데이비드’로 바꿨다. 자신의 삶이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David)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머니 박사는 진실을 숨기고 브렌다의 사례를 성에 대한 환경 결정론을 입증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의학계에 소개하며 명성을 날렸다. 급기야 1997년엔 ‘금세기 최고의 성 전문가’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데이비드는 분노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실명으로 진실을 밝힌다. 30년 동안 전 세계 의학자들이 저지른 실수와 오류가 일거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인간은 늘 착각한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사람의 태어남, 늙음, 아픔,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신은 위대하다.

김원익 문학박사 신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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