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희로애락 함께” 섬기는 CEO 뜬다

  • 입력 2006년 10월 2일 03시 02분


코멘트
《LG경제연구원이 ‘최고경영자(CEO) 브랜드의 원년’으로 꼽은 2004년경부터 CEO 브랜드 열풍은 거세게 불었다. GE의 잭 웰치나 HP의 칼리 피오리나가 기업실적 개선의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양 한국 기업도 스타 CEO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났다. 그런데 정작 CEO 브랜드 붐의 진원지인 해외에선 생각이 바뀌는 모양이다. ‘슈퍼스타 CEO 시대와의 작별’을 선언한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2007 CEO 보고서’는 “스타 CEO의 지배 시대는 끝났다”며 “경영진과 사원이 리더십을 공유하는 ‘인력’이 최고 화두”라고 지적했다.

CEO 브랜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기업은 스타 경영자 한 명의 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조직의 협력과 연대가 필수다.

“CEO 브랜드는 명성이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기본 능력”(버슨-마스텔러의 게인스로스 박사)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CEO 브랜드의 진실도 여기에 있다. 일류 CEO는 남들과 다르되 마법을 부린 게 아니다. 그 분야의 핵심을 꿰뚫고 기본에 충실했다. 수많은 스타 가수가 ‘조용필’ 브랜드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노래와 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본질에 충실했기에 최고의 반열에 우뚝 선 해외 CEO 브랜드의 기본기를 들춰봤다.

○ 마이클 델과 빌 게이츠

“비즈니스의 모든 과정은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기술이란 고객이 활용할 때 의미가 있다.”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이사회 의장은 세계 컴퓨터업계에서 손꼽히는 CEO 브랜드다. 1984년 몇 천 달러로 창업해 고객과 직거래하는 주문판매 방식으로 기존 유통망을 뒤흔들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현재 그의 재산 가치를 155억 달러로 추산한다.

델 의장의 강점은 전자상거래 시대에도 ‘전자’보다 ‘상거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은 데 있다. 관리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의 특성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요구를 받아들였다. 신기술이든 새로운 분야든 경영의 핵심은 ‘손님이 왕’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시련도 있었다. 1989년 출시한 제품명 ‘올림픽’은 성능은 뛰어났지만 판매에서 참패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보다 너무 앞서간 게 문제였다. ‘기술을 위한 기술’의 실패였던 것이다. 델은 “판단은 고객이 한다. 기업은 자신의 견해를 시장에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때 얻은 교훈은 이후 델 컴퓨터 브랜드가 몇 년간 세계 컴퓨터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밑거름이 된다. 델의 고객만족 브랜드 이미지는 CEO의 경영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13년째 세계 최고의 갑부 자리를 차지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식견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 역시 기본기에 충실한 CEO다.

전 세계 사원들과 e메일로 대화하는 건 유명한 얘기. 직원들의 열정과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것이 CEO의 첫 번째 덕목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성공은 훌륭한 스승이 못 된다”며 실패를 격려하고 실패한 기업의 직원을 채용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앞서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열심인 것도 눈여겨볼 대목.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88억 달러를 출연한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 게이츠 재단 탓에 미국 정부의 복지예산이 준다는 불평까지 나온다. CEO의 사회 환원에 대한 신념이 ‘MS 제국’이라 불리는 거만한 이미지를 바꿔놓고 있다.

○ 기본에 충실한 일관성

패션업계는 CEO 브랜드가 특히 강조되는 분야다. 디자이너나 장인의 명성이 제품 판매로 직결된다. 창업자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탈리아 구두의 명가 ‘살바토레 페라가모’. 1890년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동생 구두를 만들던 소년 페라가모가 ‘구두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충실해 성공한 사례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발 모양이 이상해 구두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라가모는 잘못 만든 구두가 발을 망가뜨린다고 봤다. 발이 우선이고 구두가 나중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진가는 확실히 드러났다. 배우의 발 모양을 면밀히 조사했고 대학에선 해부학을 공부했다. 바닥에 장심을 박아 하중을 분산시키는 특수공법이 이때 탄생했다.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바람에 스커트가 날리던 메릴린 먼로의 발엔 페라가모가 신겨져 있었다.

페라가모 가문은 지금도 가족이 직접 경영한다. 어릴 때부터 구두제조를 배운 자녀들이 페라가모의 품질과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장은 이탈리아에만 두고 제품도 본사에서 엄격히 검사한다. “디자인은 베껴도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던 페라가모. 평생 라이선스를 허용하지 않은 그의 우직함이 페라가모를 명품 브랜드로 키웠다.

“심플한 것과 재미없는 것은 다르다. 패션은 단순하면서도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야 한다.”

캘빈 클라인은 ‘패션은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미니멀리즘을 시도했다. 미국 패션이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패션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의 기능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덕분이다.

그의 브랜드 콘셉트는 언제나 일관성을 지닌다. ‘현대 여성과 남성을 위한 현대 의상을 디자인한다’는 것. 최소한으로 절제된 라인과 날렵한 형태를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넘치지 않으면서도 세련됐다.

언더웨어, 가방, 안경, 그리고 향수까지 캘빈 클라인의 미니멀리즘은 그대로 유지된다. “모든 것은 재단에서 시작한다”며 선과 형태를 강조한 캘빈 클라인의 신념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