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五感브랜딩 영혼을 유혹하다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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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대행사 ‘PR One 신화’의 김주희(33) 차장.

아침에 눈을 뜨면 ‘오랄비’ 전동 칫솔로 이를 닦은 뒤 ‘바디샵’과 ‘러시’ 제품으로 샤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식탁에 앉아 ‘켈로그’의 바삭거리는 현미 콘플레이크로 배를 채운다. 이어 블랙 톤의 ‘DKNY’옷에 은빛 ‘태그호이어’시계를 차고, ‘나인웨스트’의 깃털 달린 하이힐을 신는다.

회사에 도착하기 전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챙겨 나온다.

출근하자마자 ‘모토로라’ 블랙 레이저 폰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점심시간엔 ‘매드 포 갈릭’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입가심을 위해 빨간 색 ‘코카콜라’를 주문한다.

퇴근 후 CGV에서 영화를 본 뒤 ‘기네스’ 맥주를 곁들이며 뒷얘기를 나눈다.

어쩔 수 없다. 그는 눈을 감고도 자신이 자주 접하는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소리, 맛, 냄새, 감촉을 식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성인 1명이 하루에 만나는 브랜드가 1500~2000개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브랜드 학자 마틴 린드스트롬은 “브랜드는 이제 시각과 청각의 전통적인 2차원 감각에서 다차원적인 감각, 즉 오감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카콜라 노키아 IBM 등 이미 전 세계에 걸쳐 2, 3개의 감각을 지배해 온 파워 브랜드조차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기 위해 ‘감각의 융합’에 나서고 있다.

사실 김 차장이 스타벅스를 찾는 것은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즐거웠던 ‘오감의 만족’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귓전을 울리는 음악, 편안한 인테리어, 익숙한 디자인과 로고,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잘 차려 입은 남성들까지….

오감 브랜딩의 시대다. 삼성전자는 최근 고유의 향기와 소리, 촉각을 개발해 글로벌마케팅에 활용하는 오감 브랜딩 경영을 선언했다.

올여름 LG전자 경영진이 간부들에게 권장한 휴가 필독서는 바로 린드스트롬의 저서 ‘오감 브랜딩’이었다.

#Sound

‘BMW 330i-부드럽고 정교하다.’

‘BMW Z4-굵은 음색으로 포효하기 시작해 고음의 비명 소리로 마무리 된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BMW의 두 모델에서 나는 엔진 소리를 이렇게 평했다.

사실 두 자동차의 엔진은 같다. 그런데도 다른 소리가 나는 이유는 뭘까. 각 모델 시리즈마다 고유한 음색이 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BMW 음향통합연구팀은 7시리즈 차량은 부드러운 소리, X5는 근육질의 건강한 소리, Z4는 스포티하고 공격적인 소리로 음향의 성격을 정하고 소리 디자인을 다르게 했다.

1990년대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자동차 문에서 나는 소리를 연구하는 팀을 신설했다. 이 팀의 유일한 임무는 문을 여닫을 때 완벽한 소리를 창조하는 것.

국내 자동차 업계도 ‘듣는 즐거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같은 고급 세단이라도 에쿠스와 그랜저TG는 다르다. 에쿠스는 고급 리무진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부드러운 저음을, 그랜저TG는 한층 젊어진 느낌을 부각시키기 위해 경쾌한 엔진 가속음을 고안했다. 트렁크를 여닫을 때 나는 소리, 깜빡이와 에어컨 소리도 정교하게 계산해 디자인한다.

LG텔레콤이 제공하는 ‘틴 벨’ 서비스의 소리는 나이든 고객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연령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음대역’이 다르기 때문. 10대는 1만7000Hz도 들을 수 있지만 20대 이후가 되면 8000Hz대 이상의 고음은 듣기 힘들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반주 없는 합창이 나오는 ‘아카펠라 뮤직폰’을 개발한 LG전자 박도영 사운드 디자이너는 “폴더를 여닫는 소리, 버튼을 누를 때 나는 소리 등의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며 “휴대전화에서 소리는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mell

후각은 거부할 수 없다. 눈 감고, 귀 막고, 맛보기를 거절할 수는 있지만 숨은 쉬어야 산다. 하루에 대략 2만 번의 냄새를 맡는다. ‘귀족차의 대명사’인 롤스로이스는 ‘새 차 냄새’를 내기 위해 공장에서 출시되기 직전 롤스로이스 특유의 향을 자동차 좌석 안쪽에 삽입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향기발산장치를 갖춘 휴대전화를 미국에서 특허 출원했다. 향기 저장 공간과 컨트롤 장치, 전화가 왔을 때 향기를 발산하는 노즐을 포함하고 있다.

CGV는 2001년부터 브랜드 이미지에 후각 요소를 가미하는 데 정성을 기울여 왔다. 전국 284개 스크린 어디에서나 편백나무 향을 맡을 수 있다. 평균 25분 간격으로 1.5∼2초간 짧게 분사된다. 이 향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해 3억5000만 원이다.

브랜딩컨설팅 업체인 메타 브랜딩의 박항기 대표는 “후각은 마케팅 활용도가 낮았지만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면서 “기존 감각과 후각을 결합시킨 다양한 상품과 마케팅 기법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Sight

과거에 비해선 영향력이 줄었지만 시각적인 호소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삼성전자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작품 세계를 끌어들였다. 지펠 냉장고는 컬러 가전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앙드레 김의 감각을 활용해 색채와 문양, 디자인의 변화를 추구했다.

LG전자는 지난달 예술작품을 냉장고 전면에 새긴 ‘아트 디오스’를 내놓았다. ‘꽃의 화가’로 알려진 하상림 씨의 꽃을 냉장고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두부는 반드시 흰색이어야 할까.

풀무원 기술연구소 직원들이 한때 논쟁을 벌였던 주제다.

풀무원은 현재 학교 급식과 친환경 매장을 통해 검은색 두부를 판매하고 있다.

블랙 푸드 열풍과 색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두부가 두부다우려면 흰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CJ의 된장찌개 양념 ‘다담’은 장독대에 놓인 된장독을, 식초가 가미된 ‘미초’는 젊은 층의 유행을 반영해 허리선이 위에 있는 ‘엠파이어 원피스’ 스타일의 시각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

#Taste & Touch

LG전자 ‘초콜릿 폰’은 시각을 이용해 미각까지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다. 초콜릿 폰은 밸런타인데이에 연인에게 주면 어울릴 것 같은 고급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는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심플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검은색을 사용했고, 불필요한 선과 장식은 최대한 줄였다. 배터리 전면부의 ‘LG’ 로고까지 없앴다.

사용자가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하면 터치패드가 볼을 붉히는 연인처럼 붉은색을 띤다. 자연스레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인 셈이다.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광고에 은박지까지 등장시켰다. 은박지 위에 놓여 있는 초콜릿 폰은 달콤한 초콜릿을 연상시킨다.

김진 LG전자 MC 디자인연구소 상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초콜릿 폰은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형 단말기”라며 “사용할 때 눈과 손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한 휴대전화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이 내놓은 ‘럭키스타’는 체리 주빌레, 바닐라 브리즈 등 5가지 아이스크림 맛과 향을 내는 게 특징이다. 10, 20대 감성세대는 ‘충치 예방’이라는 구호보다 ‘키스할 때 입에서 아이스크림 냄새가 난다’는 말에 더 끌린다는 점을 겨냥했다.

속옷·양말 제조업체 인따르시아의 성인용 양말은 발 냄새를 없애 주는 향기 양말이다. 특히 각종 향이 첨가된 눈에 보이지 않는 알갱이가 캡슐 형태로 있다. 신고 다닐 때마다 상쾌한 자극을 주며 캡슐이 깨질 때 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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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 김현수 기자 kimhs@donga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

“향기만 살짝 스쳐도 제품 떠올리게 하죠”
LG생활건강 김병현 센베리 퍼퓸하우스 소장

“살구비누에 살구향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향은 브랜드 정체성을 감각으로 느끼게 합니다.”

LG생활건강 센베리 퍼퓸하우스의 김병현(49·사진) 소장은 20년 넘게 향기만 맡아온 베테랑 조향사(調香士). 냄새로 향을 만드는 전문가다.

사실 살구비누에서 살구향이 나는 것은 ‘살구란 이럴 것이다’고 상상한 향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살구 추출물 자체에서는 살구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소장은 “브랜드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다양한 천연 화학물질로 향을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생활용품 업체들이 향에 주목한 것은 최근의 일. 업계 최초의 향 전문 연구소로 7000여 가지의 향 라이브러리를 갖춘 LG생활건강의 센베리 퍼퓸하우스는 올 2월에 생겼다.

김 소장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은 정보기술(IT) 분야와 달리 기술 발전의 속도가 더디다”면서 “이 때문에 감각을 자극할 만한 차별화 요소를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향이 주목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본래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향은 온갖 화학물질에서 나오는 역겨운 냄새를 지우기 위해 필요했다. 그래서 대다수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무난한 향을 삽입했다. 그러나 프리미엄 제품 경쟁이 치열해지고 브랜드의 타깃 층이 뚜렷해지면서 독특하고 매혹적인 향의 가치가 부각됐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LG생활건강의 고급 한방화장품 ‘후’를 예로 들었다. “경쟁사와 차별화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한방 향을 만들어 내야 했죠. 동의보감을 뒤지거나 전국의 산을 돌며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향을 찾으러 다녔어요.”

김 소장은 “냄새만으로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향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요즘은 패션쇼를 주시하면서 트렌드를 이끌 향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車타면 아로마 향기… 꽃밭에 들어온 느낌
‘향기 타이어’ 개발 조선이 금호타이어 연구원

타이어는 자동차의 신발이다. 하지만 타이어 특유의 고무 타는 냄새, 즉 ‘발 냄새’는 유쾌하지 않다. 금호타이어 중앙연구소 재료개발팀의 조선이(36·사진) 선임연구원은 타이어의 고약한 발 냄새를 없애는 작업에 매달렸다. ‘향기 나는 타이어’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금호타이어의 브랜드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감 브랜드의 효과를 제품 개발에 활용한 것이다.

그의 노력은 5월 나온 ‘아로마 타이어’로 결실을 맺었다. 이 타이어는 세계 최초의 향기 타이어. 자동차가 달릴 때 향긋한 라벤더 향을 발산한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연합 중국 러시아 등에 특허 출원됐다.

30여 종의 물질이 혼합된 향은 실외에서는 반경 10m, 실내에서는 좀 더 떨어진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차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에어컨을 켜면 외부 공기와 함께 이 향기가 들어온다.

그동안 타이어의 진화는 펑크가 나도 주행이 가능한 ‘런플랫(Run-Flat)’ 타이어, 고속 주행성과 조종 안정성을 높인 ‘UHP’ 타이어 등 기능 위주로 이뤄졌다. 컬러 타이어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후각을 통한 접근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제품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향수를 떠올렸습니다. 향수 몇 방울이 사람의 분위기를 다르게 하는 것처럼 타이어의 이미지도 바꾸고 싶었어요.”

타이어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하는 향기를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일반 향수와 달리 주행할 때 70∼100도에 이르는 고온에서 제대로 발산되는 배합 비율을 찾아야 했다. 첫 아이디어가 상품화될 때까지 2년이 걸렸다.

“타이어의 아로마 효과 때문에 차 옆에 서 계시는 분을 종종 발견합니다. 타이어에서 나는 향이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는 운전자에게 미소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이제 회사에서 조 과장이 아니라 ‘아로마’로 불린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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