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스칸디나비안 스타일…나무의자 유리병에도 자연미

  • 입력 2006년 3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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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핀란드 헬싱키.

백야의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오후 3시만 되어도 어둠이 찾아온다.

털모자를 썼는데도 추위가 매서웠다. 이름난 스토크만 백화점에 들어서는데 유리문에 육각형 결정체의 눈송이들이 송송 붙어 있다.

같은 스칸디나비아 지역 국가인 스웨덴의 ‘앱솔루트’ 보드카 유리병에 그려져 있던 바로 그 눈송이다.

‘아, 북유럽의 자연은 인간에게 이렇게 영감을 주었구나.’

백화점에는 선물을 준비하려는 이들도 북적였다. 그중 인기 있는 곳은 그릇 가구 침구 등 생활용품 매장이었다. 두 살 배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을 나선 주부 산나 리드크비스트(31) 씨는 루돌프 사슴 모양의 ‘펜틱’ 은촛대, 양초를 담을 수 있는 초록색 ‘이탈라’ 유리그릇, 빨간 사과가 그려진 ‘마리메코’ 앞치마를 샀다.

그는 “겨울이 길고 춥고 어둡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며 “양초와 예쁜 소품으로 집을 꾸미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라고 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디자인은 이처럼 인간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데서 시작된다.

○ 자연과 인간의 만남

저렴하고 누구나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스웨덴 가구 ‘이케아’, 기하학적 패턴으로 북유럽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표현하는 핀란드 패션 브랜드 ‘마리메코’, 세계 유행 트렌드를 합리적 가격에 판매하는 스웨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 H&M, 덴마크 오디오업체 뱅앤올룹슨(B&O),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인 핀란드 ‘노키아’….

로테크부터 하이테크에 이르기까지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유명 제품은 셀 수 없이 많다.

북유럽 국가들, 즉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 국가들의 디자인 콘셉트와 파워는 울창한 산림, 호수와 초원 등 ‘천혜의 자연’에서 비롯된다. 이들 국가가 인종과 언어가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문화적 동질성을 갖는 이유다.

핀란드의 알바 알토, 덴마크의 아르네 야콥센, 스웨덴의 스벤 마르켈리우스 등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면서 독특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 유리병에도 자작나무 의자에도 이들의 디자인에는 산과 호수 등 자연의 곡선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조형적 측면에서는 독일 기능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발 더 나아가 사회의 개혁과 인류의 진보를 믿는 철학을 반영했다. 환경 문제를 고려하는 등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디자인대 티모 사이리 교수는 “자연미를 살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정직함, 검소함, 사용자 친화성과 함께 민주주의 정신을 갖는다”며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디자인을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 ‘디자인 문화’ 조성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곧 지역 국가들의 정체성으로도 연결됐다. 우아하고 현대적인 제품 디자인이 곧 그 나라의 국가 아이덴티티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자국을 홍보할 수 있는 도구가 디자인을 비롯한 창조산업이라는 점을 일찍이 간파했다.

스웨덴은 공예 디자인학회와 산업디자인재단이라는 두 개의 디자인 단체를 정부 위탁 기관으로 두고 디자인 진흥을 위한 예산을 지원한다. 각종 전시회를 열고 디자인 관련 상을 수여하는 이 단체들에는 일렉트로룩스, 앱솔루트 등 민간 기업의 지원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디자인의 해’를 선포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 업무생활을 위한 디자인, 성장요소로서의 디자인 등 7대 핵심 전략을 추진하기도 했다.

핀란드는 2010년까지 전체 기업의 80%가 디자인을 전략적 기획활동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디자인포럼 핀란드’는 헬싱키 시내와 공항에 디자인상품 매장을 운영하면서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디자인의 부가가치와 힘을 알린다.

핀란드 헬싱키 디자인대, 스웨덴 콘스트팍 디자인대 등 대학 교육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이끄는 힘이다. 이들 대학은 10여 년 전부터 외국 학생을 적극 유치하는 동시에 국제디자인경영프로그램을 통해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스웨덴산업디자인재단 로빈 에드만 대표의 말은 자연의 혜택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중심에 두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을 압축한다.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 스스로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능적이면서도 미학적인 그 해결책은 환경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힙니다.”

헬싱키·스톡홀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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