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不 肖(불초)

  • 입력 2003년 1월 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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肖-닮을 초 畵-그림 화 範-법 범

罵-욕할 매 焉-어찌 언 朽-썩을 후

한자에서 ‘肖’는 ‘닮다’는 뜻, 그래서 肖像畵(초상화)는 얼굴 모습에 닮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물론 ‘不肖’라면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못난 자식’으로 되어 있다. 어찌하여 닮지 않았다고 ‘못난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정신적인 면이다. 오늘날에는 偉人(위인)이 많기도 하다. 또 주위를 둘러보면 본받을 만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옛날에는 평생을 두고 典範(전범)으로 삼아야 할 분으로 몇몇 聖人(성인)이나 조상, 또는 아버지 정도가 있었다. 즉 자식으로 태어나 이들의 爲人(위인·됨됨이)을 닮지 못할 때 그것은 不材之人(부재지인)이 된다. 한마디로 ‘쓸모 없는 인간’인 셈이다. 특히 아들로서 아버지를 닮지 않았을 때 못난 아들, 심하면 불효자식으로 罵倒(매도)되었다.

둘째, 육체적인 면이다. 죽음에 대한 초기 유가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는 來世(내세)라는 대안을 제시한 불교나 生死(생사)를 동일시했던 도가, 또 不死藥(불사약)을 추구하면서 끈질기게 대항했던 도교와는 많이 달랐다. ‘未知生, 焉知死’(미지생, 언지사·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랴).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대답한 말이다. 곧 그는 죽음보다는 삶에 더 애착을 쏟았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고 피할 수 없는 것. 孔子같은 聖人이야 置之度外(치지도외)할 수 있겠지만 보통사람에게는 어림없는 법. 어쨌든 대안이 필요했다. 여기서 제시된 것이 不朽觀念(불후관념)이다. 肉身(육신)은 죽되 이름을 남기면 永生(영생)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방법이 셋이 있으니 立德(입덕), 立功(입공), 立言(입언)으로 이른바 三不朽(삼불후)다.

그러나 이름 남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三不朽 어느 하나 보통사람들로서는 焉敢生心(언감생심)이다. 그래서 또 다른 대안이 필요했으니 後孫(후손)을 통하여 육신의 연속을 꾀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육신의 複製(복제)다. 마치 아메바나 박테리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複製시킴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곧 자식은 자신의 複製品(복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자식을 複製品으로 여긴 이상 아무리 많은 자식을 낳았어도 자신과 닮지 않았다면 永生의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닮아야 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았을 때 그것은 곧 不孝를 의미했던 것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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