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아이 손잡고 세계인물열전 구경… 하루가 짧아요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충북 음성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56만 m²(약 17만 평)에 달하는 면적, 높이 3∼5m에 무게는 30∼60t 정도에 이르는 세계 각국 위인들의 석상 1000여 개를 갖춘 조각공원. 서울 여의도 공원(22만 m²)보다 2배 이상 넓은 면적에다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만 놓고 보면 국내 정상급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 있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있는 ‘음성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이다.》

봄에 자녀와 함께 갈 만한 곳이라며 한 선배가 얘기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정도 규모라면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법한데 어떻게 그렇게 안 알려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성까지 내려갔다가 헛걸음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공원을 만든 정근희 음성현대병원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 공원을 둘러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정 이사장은 “제대로 보려면 5박 6일은 돼야 하고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보더라도 차로 1시간 이상은 걸린다”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면서 17일 오후 음성으로 차를 몰았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을 나서자 공원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왔다. 길이 갈라지는 곳마다 이정표가 있어 공원은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촬영·편집 : 박영대 기자

○ 대처 前총리-아웅산 수치 등 해외인물도

‘음성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에 들어서면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 등 4대 성인의 전신 석상(石像)이 눈에 띈다. 높이가 3m 정도 됐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등 한국의 지도자들도 나란히 놓여 있다. 비슷해 보였지만 실물과 똑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영구히 보존될 작품이어서 현존하는 인물은 지금의 나이 든 모습 대신 젊었을 때 사진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역대 대통령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처는 평범한 구멍가게 집 딸로 태어나 영국 최초로 여성 총리가 된 사람이란다.”

김기철(43·서울 중랑구 면목동)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에게 대천 전 영국 총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김 씨는 “큰 바위 얼굴 모아 놓은 공원이 있다고 해서 처가에 갔다 오는 길에 들렀는데 아이들한테 좋은 공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위인은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60대 이상의 관람객 20여 명은 거의 빠짐없이 두꺼운 뿔테 안경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김구 선생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인물상은 아니지만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은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비 발굴 당시 찍어 두었던 탁본 세장 가운데 한 장을 소장하고 있는 정 이사장이 직접 제작을 지휘한 작품이다.

원본을 그대로 베껴 새긴 비와 어린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든 한글판 비 등 2개다. 하나의 무게가 60t이나 된다.


▼촬영·편집 : 박영대 기자

○ “위인들을 껴안아 보세요”

‘만지지 마세요.’ ‘사진촬영 금지.’

공원이나 박물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경고문이다. 만져 보고 싶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마음을 달래야 할 때가 많다.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은 그런 아쉬움이나 허전함과는 거리가 멀다.

공원 안내원들은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만져 보고, 또 껴안아 보라고 권유한다. 실제로 일본 관광객들은 ‘욘사마’ 배용준 작품을 껴안기도 하고 조각상에 입맞춤도 한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자녀들과 이곳을 방문할 때는 먼저 독립운동가의 행적이나 위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오라고 조언한다. 인물에 대해 알고 오면 훨씬 더 관심을 갖고 보기 때문이다.

○ 휴일엔 오전9시∼오후8시 관람

연중 문을 연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관람료는 일반 6000원, 학생 3500원.

서울이나 대전 방면에서 간다면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일죽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일죽 나들목에서 나와 생극 방면으로 13km. 이정표가 있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운행시간은 1시간 20분. 청주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 1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오후 6시 40분까지 버스가 있다. 운행 시간은 1시간 30분. 생극 버스정류장과 조각공원을 왕복하는 셔틀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무료로 운행된다.

음성=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돌로 만든 문화재 수백대 후손까지”▼

이 공원을 조성한 정근희 이사장은 1989년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러시모어 국립공원에 조각된 미국 대통령 4명의 석상인 ‘큰 바위 얼굴’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정 이사장은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현대정신병원 주변을 조각공원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미켈란젤로나 로댕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수명이 200년밖에 안 됩니다. 다보탑처럼 돌로 된 문화재는 1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조각공원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국 러시모어 산의 ‘큰 바위 얼굴’을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하루 6000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재료 확보를 위해 중국의 돌산을 50년간 임차했다. 제작은 중국 현지 석공들이 한다. 국내에는 돌산도 없고 높이 1m 정도 되는 석상을 만들 조각가는 있지만 높이 4m 내외의 돌을 조각할 만한 조각가는 없다.

5m 높이의 석상을 하나 만들려면 5명이 7개월은 꼬박 작업을 해야 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배에 실어 국내로 들여온다.

2004년 5월 문을 연 후 세계 180여 개국의 인물 조각상 1000여 점을 비롯해 각종 동물, 사물놀이 등 민속 조각, 명시(名詩) 등을 새긴 비 등 모두 3000여 점이 들어왔다.

작품들은 주제별로 분류돼 있기는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돼 있지는 않다. 서울 올림픽공원이나 여의도 공원처럼 조경이 깔끔하게 된 공원을 생각하고 찾아가는 사람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화장실이나 매점 같은 편의 시설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정 이사장은 “봄, 가을에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음성=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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