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올해 입시요강에서 논술고사 제시문에 한자(漢字)를 혼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당한 조처다. 중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 국가들과의 교류가 나날이 증가하는데도 한자는 우리 학생들에게 낯선 문자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 어감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떨어진다. 우리말의 일부인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놓치기 때문이다.
한자 교육은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한자 배우기에 열심이다. 그러나 한자는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공부다. 아직도 ‘단순 무식한 암기’로 한자를 익히게 하려는 시도가 많은 까닭이다. 이 점에서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의 시도는 참신하다. 제목 그대로, 한자에 담긴 의미들을 ‘살려내어’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한자의 뛰어난 논리성과 조어(造語) 능력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보자. 눈 목(目) 위에 손 수(手)를 얻으면 무슨 글자가 될까? 간(看)이다. 눈 위에 손을 얹고 찬찬히 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눈을 작게(少) 뜨고 살펴본다는 글자는? 살필 성(省)이다. 아득히 먼(兆) 곳을 보는 것(目)은? 조(眺)이다. 이같이 단어의 구조를 논리로 파헤쳐 가다 보면, 한자 공부는 어느덧 ‘단순 암기’에서 ‘원리 이해’로 바뀐다.
나아가, 우리말 어감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게 해 준다. 고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어휘를 선택했다. 엇비슷한 세력이 싸울 때는 공(攻)자를 쓰고,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칠 때는 벌(伐)자를 썼다. 상대의 잘못을 응징할 때는 토(討)자를 쓴다. 이런 원리를 알고 있다면, ‘공격’과 ‘토벌’의 의미는 더 분명하게 가려질 터이다.
한자는 하나하나가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기도 하다. 죽마고우(竹馬故友)의 뜻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많아도, 죽마가 뭔지는 대부분 모른다. ‘흥청망청 쓴다’의 흥청(興淸)은 연산군이 뽑은 예쁘고 춤 잘 추는 궁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처럼 한자 공부는 역사적 이해까지 덤으로 제공한다.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의 뛰어난 점은 삽화에도 있다. 시치미, 비익조(比翼鳥) 등 말로는 잘 잡히지 않는 어휘들을 섬세한 도판으로 잘 설명해 준다. 때로는 폭소가 터지는 그림도 있다. ‘도와자사(盜瓦者死)’라 적힌 한(漢)대의 기와. 매우 멋진 문양이지만, 그 뜻은 “기와 훔친 놈은 죽는다”란 뜻이다.
짧고 함축적이면서도 유려한 한문학 전공자들의 문장은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를 통해서라면, 아이들은 어려운 한자를 재밌게 공부할 수 있을 듯하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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