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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파리지앵의 놀이터 ‘베르시 빌라주’

입력 2006-07-07 03:08업데이트 2009-10-0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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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형의 처마가 달린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베르시 빌라주’ 거리.
파리에선 드물게 오전 2시까지 문을 여는 야외식당. 오른쪽에 ‘베르시 빌라주’의 상점 안내판이 달려 있다
밤 10시까지도 해가 환한 긴 여름, 파리의 젊은이들은 어디서 놀까.

우선 가장 파리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제르맹 데프레를 꼽을 수 있다. 바스티유 광장 인근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카페와 바들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부터 활기를 찾는다.

파리 동쪽 12구에 있는 ‘베르시 빌라주’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파리의 다른 곳에 비해 이곳이 두드러지게 달라 보이는 점은 관광객에게 덜 알려진 덕분에 파리지앵의 아지트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지앵들이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삶을 즐기는 곳이다.

이곳은 대형 영화관 UGC가 있고 의류 화장품 여행용품점 어린이서점 식당가 등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상점들이 모여 있어 젊은이들뿐 아니라 가족 손님도 많이 오는 지역이다. 오후 7시면 문을 닫는 여느 매장과 달리 이곳 가게들은 오후 9시까지, 식당이나 와인바는 오전 2시까지 문을 연다는 것도 기나긴 여름 밤을 즐겁게 해 줄 요소로 꼽힌다.

베르시 빌라주는 건축 양식부터 독특하다. 아치형의 처마가 달린 나지막한 건물 여러 개가 어깨를 맞대고 연결돼 있다. 바닥이 아스팔트가 아닌 우둘투둘한 자갈로 만들어진 것 하며 기차가 다니지 않는데도 철길의 흔적이 길 위에 남아 있는 것도 신기하다.

베르시 빌라주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서점에 갔더니 이곳의 역사와 유래가 담긴 책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 일대 건물은 1880년경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온 와인을 파리와 인근 지역에 공급하는 저장 및 운반 창고로 쓰였는데, 그 전통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당시 건축물의 일부를 보존해 왔다는 것이었다. 전시용으로 군데군데 심어진 포도 넝쿨하며 ‘니콜라’ 등 와인 전문 숍에서 시음용 와인잔을 바깥에 내놓은 모습에서 그 역사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베르시 빌라주는 1990년대에 서서히 개발되면서 파리의 첫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화제를 모았다. ‘프렌치 어번 엔터테인먼트 글로벌 센터’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시작한 개발 프로젝트는 느긋하게 먹고 마시는 문화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전통과 새로운 오락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조화시키는 콘셉트로 가닥을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센 강변과 도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대형 영화관 UGC 빌딩이 막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변에 작은 숲이 조성돼 있어 베르시 빌라주 안쪽 쇼핑가와 식당가는 놀이동산처럼 외부 세계와 차단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베르시 빌라주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입주한 브랜드들도 중상층 소비자들을 겨냥한 게 대다수다. 이 중 ‘올리비에 & 코’라는 매장에 눈길이 갔다. 이곳은 화장품 브랜드 ‘록시탄’의 창립자 올리비에 보송 씨가 만든 브랜드로, 유기농 올리브로 만든 식품이나 화장품을 판매한다. 식용 올리브 오일, 올리브로 만든 요리를 비롯해 스킨케어용 화장품과 다양한 비누까지 영역은 다르나 원료가 같다는 이유로 조화롭게 진열된 제품들이 시선을 잡았다. 이곳 상점에서 일하는 클레어 쿠페 씨는 “웰빙을 추구하고 작은 제품 하나도 꼼꼼히 따지는 20∼40대 여성이 고객”이라고 말했다.

시선을 끄는 또 다른 브랜드는 레조낭스다. 이곳도 웰빙 및 건강용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숙면을 취하게 하는 아로마 오일, 목의 피로를 덜어주는 목전용 쿠션, 두피를 자극한다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빗 등이 베스트셀러였다.

건강 관련 서적 코너에는 ‘풍수(風水)’라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책을 함께 읽는 커플부터, ‘집에서 하는 기체조’를 읽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이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레조낭스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나튀르 & 데쿠베르트’는 탐험과 여행을 주제로 한 상점. 천체망원경이나 새소리가 나는 뮤직 박스를 비롯해 토끼 분장을 하고 어린이 고객에게 물건을 찾아주는 종업원 등 색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베르시 빌라주에서는 유명 화장품 멀티숍인 ‘세포라’도 ‘세포라 B.’로 이름을 달리한다. 미용을 나타내는 프랑스어 ‘보테’와 흰색이라는 뜻의 ‘블랑’, 그리고 ‘베르시’가 모두 B로 시작한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흰색의 깔끔한 인테리어에 고급 스킨케어 전문 브랜드 위주의 상품들이 여느 세포라 매장과 차이가 났다.

휴가 첫날을 베르시 빌라주에서 영화쇼핑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는 패션브랜드 매니저 플로리앙 델피 씨는 “베르시에서는 삶의 속도가 다르다.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 없이 천천히 머무르면서 내 몸과 정신을 살찌울 준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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