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삶이 담긴 명품 있습니다”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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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의 삶과 사연을 담은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뉴욕의 ‘ABC 홈 퍼니싱’. 판매 액의 20%는 사회 공헌 사업에 기부한다. 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세계 각지의 삶과 사연을 담은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뉴욕의 ‘ABC 홈 퍼니싱’. 판매 액의 20%는 사회 공헌 사업에 기부한다. 사진 제공 박새나 통신원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높게 뻗은 석조 기둥과 거대한 유리문을 지나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나옴 직한 별천지가 펼쳐진다. 바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19가에 있는 매장 ‘ABC 홈 퍼니싱’이다. 이곳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매장으로 유명하다.

눈을 들면 눈부신 샹들리에와 인도에서 수입된 페이즐리 무늬의 블라인드 패널이 머리 위까지 내려와 있다. 섬세한 자기와 그릇이 값비싼 시트와 어우러져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쪽에는 프랑스에서 수입된 핸드 메이드 초콜릿과 중국 앤티크 침대 등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세계 곳곳의 물건들이 묘하게 모여 있다.

처음 방문한 이들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만큼 화려하고 풍요롭다. 6층 건물 전체가 앤티크와 모던, 컨트리 스타일 등 층마다 다른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 ‘플러스 알파’가 있다. 보라색 계열의 강렬한 무늬가 새겨진 펠트로 만든 의자에는 1975달러(약 190만 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비싼 듯하지만 의자 옆에 붙어 있는 설명서를 보면 수긍이 간다.

이 의자는 100여 년 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유목민이 만든 것이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다. 이를 읽고 나면 190만 원이라는 가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일이 작은 구슬을 엮어 만든 특이한 모양과 원색의 조합이 인상적인 인형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사는 여성이 손으로 구슬을 꿰어 만든 것으로 ‘원숭이 인형’으로 불린다. 가격은 295달러(약 28만 원). 재활용된 종이를 구슬처럼 압축해 만든 붉은 페이퍼 목걸이는 에이즈에 감염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우간다 여성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ABC 홈 퍼니싱의 전략은 지구의 다른 쪽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의 관련 상품(cause-related product)’을 개발해 소비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폴레트 코울 씨가 오랫동안 꿈꿔 온 비전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단순히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상품에 담는 것은 이 회사 전략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판매 가격의 20%를 세계 각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특히 그 돈의 사용처를 매우 구체적으로 공개해 고객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일례로 이 회사는 한 예술가가 만든 파스텔톤 자기의 수익금 중 일부로 중남미 과테말라의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 건립을 돕는다고 밝히고 있다. 또 1000달러(약 962만 원) 상품권의 수익금 일부는 생식기의 일부를 절단하는 할례를 거부하는 아프리카 마사이족 여자 아이를 돕는 데 사용된다. 이를 위해 코울 씨는 1년에 여러 차례 멕시코 페루 네팔 등 세계 각국을 순회하고 있다.

그는 “ABC에서 판매하는 가구들은 환경친화적이어야 하며, 램프에서 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이 단순한 매매를 넘어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며 회사를 떠난 매니저들도 있지만 현재 이곳에서 취급하는 물건의 20%가 환경친화적인 제품으로 바뀌었고, 이익금은 열대우림 보호나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위한 교육 사업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곳의 연간 매출은 8억 달러. 판매 상품의 수준도 세계 각지의 고급품들이다. 주 고객들은 부유한 뉴요커들이다. 이들은 “특이한 상품은 물론 거기에 담겨 있는 독특한 사연도 함께 사면서, 세계 사회에 기여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뉴요커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ABC 홈 퍼니싱의 성공은 뉴요커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사이족 여성이 만든 인형을 보고 있던 일레인(37) 씨는 “분명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선물이 될 것 같다”며 “여유가 있다면 20%의 값을 더 지불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보석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수전 리캇(42) 씨는 “제품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회 공헌 메시지를 통해 소비자들은 세상 어딘가에서 해당 상품을 만드는 데 노동을 제공한 이들을 떠올린다”며 “뉴요커들에게 의미가 담긴 상품의 가치와 디자인이 더 높게 평가받으며 럭셔리 상품일수록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히스콕스 교수가 지난해 6∼11월 실시한 소비자들의 행태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상품을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것에 대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BC 매장에 자주 오는 부유층 고객 중에는 구매를 통한 사회 공헌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다고 한다.

뉴요커들은 사실 푼돈을 아끼기 위해 자린고비처럼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ABC의 고객처럼 필요할 때는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뉴욕 생활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박새나 통신원(패션디자이너) saena.park@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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