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프랑스版 삼순이 신드롬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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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민영방송 TF1 ‘스타 아카데미’의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프랑스판 삼순이’ 마갈리. TF1 홈페이지
프랑스 민영방송 TF1 ‘스타 아카데미’의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프랑스판 삼순이’ 마갈리. TF1 홈페이지
《최근 프랑스에서 ‘마갈리 신드롬’이 일고 있다. 마갈리 신드롬은 프랑스인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 ‘스타 아카데미’에서 최종 우승한 18세의 ‘못난이’ 여고생 마갈리에게서 비롯된 현상이다.》

민영방송인 TF1이 주관해 예비 스타를 발굴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수개월간 금발 미녀들과 무대 경험이 많은 재주꾼들이 경합했지만 우승은 엉뚱하게도 키도 작고 뚱뚱하며 성격도 소심한 마갈리가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일으켰던 ‘못난이 신드롬’의 프랑스 버전이 벌어진 셈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송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왔다”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스타 아카데미는 프랑스에서는 드물게 시청률 30%를 오르내리는 인기 프로그램. 세대별로 차이는 있으나 10대와 20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스타 아카데미에는 예선을 거친 예비 스타 10여명이 출연해 최종 승자 한 명을 가린다. 이들은 약 4개월 동안 고성(古城) 내 스튜디오에서 합숙하고 가창 무용 연극 등 엔터테인먼트 기본기 훈련을 받는다.

이들의 생활은 고성 곳곳에 설치된 수십 대의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해지고 우승을 향한 이들의 땀방울과 애환, 출연자 간의 우정과 갈등, 때로는 사랑까지도 생방송으로 전달된다. 이들의 촬영 뒷이야기와 사생활은 슈퍼마켓이나 신문 가판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TV 전문지에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낱낱이 전한다.

출연자들은 매주 강사진의 평가와 시청자 투표에 의해 한 명씩 탈락한다. 그리고 매년 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최종 승자로 남은 남녀 각 한 명이 결승전을 벌인다. 한 해의 출연자가 모두 참여한 싱글 음반과 뮤직 비디오가 판매되지만 대체로 1등 만이 가수로 데뷔해 싱글 음반을 낸다. 2등은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지난해 1등 수상자로 ‘꽃미남’ 스타일의 그레고리는 가수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으며 첫 회 수상자인 제니퍼는 최근 프랑스에서 최다 음반 판매를 기록했다.

스타 아카데미에서 마갈리가 우승한 것은 이변 중 이변. 더욱이 마갈리는 다른 출연자보다 가창력이나 춤 실력이 빼어나지도 않았다. 강사진으로부터는 “청중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강사진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평가였다. 마갈리는 매번 패자부활전에서 시청자 투표에 힘입어 ‘부활’했다. 특히 최종 결선은 시청자들의 인기 투표나 다름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와 인간적인 고민을 내비쳤던 마갈리의 일상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마갈리는 또 금요일마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뮤지컬 형식의 퍼포먼스에서 날씬한 다른 출연자 못지않게 적극적인 율동을 선보이면서 “무대 위에서 열심히 애쓰는 모습이 귀엽다”는 시청자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체육 무용 과목에 집중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지기도 했다.

‘스타 아카데미의 숨겨진 얼굴’이라는 책을 쓴 언론인 주느비에브 프티 씨는 “방송사 카메라는 다른 경쟁자에 비해 마갈리의 얼굴을 덜 비췄고, 강사진은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역력히 보였으나 시청자들의 투표로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스타 아카데미는 2년 전 금발의 백인남성 엘로디와 아랍계 여성 소피아가 결승에 오른 가운데 소피아의 실력이 낫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엘로디가 최종 승자로 뽑혀 인종 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과에 대한 시청자 평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파리 주변의 아랍계 소요 사태로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이슈가 확산되면서 마갈리가 못난이들의 심경을 대변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스타 아카데미의 교수진 대표 알렉시아 라로슈 주베르 디렉터는 “마갈리의 우승은 음악적 재능의 승리가 아니라 비만인을 포함해 자신감이 없고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신드롬”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비만 관련 단체인 알레그로 포르티시모의 비비안 가키에르 회장은 “마갈리는 신체적 열등감에 시달려온 10대들의 지지를 받았다”며 “방송사는 흑인이나 뚱뚱한 사람을 후보로 올린 것을 소수자에 대한 일종의 쿼터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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