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 김수로 “20년간 맷집 키운 불혹의 연기인생 이제 잽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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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07시 00분


■ ‘반칙왕’, 11년만에 링 위에 다시 서다

넉달간 개인레슨 받고 땀흘리니 5㎏ 쏙
카메라 앞선 충분히 밥값…올핸 무대 올인
40대의 나, 이젠 ‘웃음 속 감동’ 전하겠다

김수로는 인터뷰를 마치고 ‘주먹질’ 솜씨를 보여줬다. 4개월간 ‘연습’이 아닌 ‘훈련’을 했다는 펀치는 날렵했다.
김수로는 인터뷰를 마치고 ‘주먹질’ 솜씨를 보여줬다. 4개월간 ‘연습’이 아닌 ‘훈련’을 했다는 펀치는 날렵했다.
맨 앞줄에 앉아 발을 뻗으면 바로 닿을 정도로 무대는 객석과 가까웠다. 무대의 오른쪽 절반은 링이 차지하고 있었고, 왼쪽에는 샌드백과 펀치볼이 걸려 있었다.

권투를 소재로 소시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연극 ‘이기동 체육관’.

“공연 중 배우들이 흘리는 땀만으로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이 작품에서 김수로는 청년 이기동 역을 맡았다.

텅 빈 공연장 객석에 앉아 기다리기가 멋쩍어 샌드백을 툭툭 두드리는데, 무대 뒤편 문을 열고 김수로가 들어왔다.

김수로는 ‘이기동 체육관’ 출연을 위해 4개월 동안 ‘연습’이 아닌 ‘훈련’을 했다. ‘연기보다 권투연습에 더 매진했다’란 소문은 사실이었다. 배우들과의 트레이닝으로 모자라 프로 권투선수에게 개인레슨을 받았다. 덕분에 체중이 5kg나 쑥 빠졌다.

사람들은 그를 ‘개그맨에 가까운 연기자’ 또는 ‘예능인’으로 본다. 하지만 김수로는 한국 연극계의 명문극단인 ‘목화’ 출신이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2학년 재학 중에 극단생활이 해보고 싶어 불쑥 들어갔다. ‘백마강 달밤에’가 데뷔작이다. 이후 3년간 ‘목화’ 소속 배우로 활동하다가 복학해 졸업했다.

영화, 방송에 출연하며 사실상 연극을 떠났던 김수로는 2009년 ‘밑바닥에서’라는 작품으로 연극에 복귀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이기동 체육관’ 무대에 섰다. 궁금하다. 무엇이 자꾸만 그를 강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마냥 연극무대로 회귀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연기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연기가 있는데 방송, 영화에서는 100% 맞출 수가 없죠. 연극을 보다 보면 ‘저런 작품은 돈이고 영화고 다 포기하고 해보고 싶다’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이유는 또 있다. “연극에 대한 마니아층을 저도 갖고 싶은 거죠. 김수로가 1, 2년에 한 편 하는데 어줍잖은 거 하겠습니까, 하하. 꾸준히 몇 년이고 쌓아 가다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겠죠.”

김수로는 지난해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폭주족 출신의 변호사 강석호역으로 인기를 모았다. 첫 드라마 도전이었지만 연말 연기대상에서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드라마 성공 덕분에 CF출연 제의도 쏟아져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올해 밥값은 다 했다 싶어 소속사에 당당히 말했죠. 이제 연극에 올인(다 걸기)하겠다고. 후배 10명한테 돈을 주고 괜찮은 연극을 본 뒤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최종후보작으로 추천한 ‘이기동 체육관’을 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죠.”

김수로의 연기 인생에서 결정적인 ‘훅 한 방’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김수로는 영화 ‘주유소습격사건(1999)’을 꼽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중국집 배달원 철가방역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였다. 그리고 ‘흡혈형사 나도열(2006)’에서 드디어 주연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첫 주연영화가 ‘흡혈형사 나도열’이 아니라는 것. 그는 ‘브루스백이라 불러다오’란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브루스백’은 물론 ‘브루스 리(이소룡)’에서 따온 것이다. 첫 주연을 위해 이소룡이 창안한 무술 절권도를 1년 6개월이나 배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도에 ‘엎어져(제작이 중단됐다는 영화계 은어)’ 개봉되지 못했다.

“정직한 작품이 좋습니다. 무자비하고, 벗는 거 전 못합니다. 30대에 웃음을 드렸다면, 40대에는 웃음 속에 감동을 드려야죠. ‘이기동 체육관’은 첫 단추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김수로는 4개월 동안 갈고 닦은 ‘주먹질’을 보여주었다. 김수로 표현으로 “다 죽었다”라던 자세가 나왔다.

지금까지 그의 연기인생이 ‘잽, 잽’이었다면, 이제는 ‘한 방’이 터질 일만 남았다. 그의 ‘마지막 공’이 울릴 날은 아직도 멀었다.

● 김수로 프로필

본명 김상중. 1970년 경기도 안성 태생. 서울예술대학, 동국대학교 연극학과를 나왔다.

교수 추천으로 극단 ‘목화’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영화계에 진출. ‘주유소습격사건(1999)’에서 중국집 배달원 철가방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흡혈형사 나도열(2006)’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울 학교 이티(2008)’, ‘국가대표(2009)’ 등을 통해 주·조연으로 사랑받았다.

2006년 KBS 2TV ‘상상플러스’에서 ‘꼭짓점 댄스’로 인기를 모았고, 이후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김계모’, ‘게임 마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0년 KBS 2TV 드라마 ‘공부의 신’으로 KBS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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