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28>속삭임으로 다가오는 하나님

  • 입력 2003년 9월 18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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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스라엘에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지자를 죽이는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했을 때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사람이다.

그가 암담한 현실을 개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렀다. 밖에 나가 하나님을 찾으라는 분부였다.

엘리야는 분부대로 산에 서서 하나님을 기다렸다. 처음에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술 정도로 센 바람이 지나갔다.

이 바람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까 기다렸지만 거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요란한 것들이 다 지나가고 드디어 ‘세미한 소리’,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 ‘미세한 소리’ 중에 나타나 엘리야에게 앞으로 할 일을 자세히 일러주셨다고 한다.(열왕상 19장)

한국의 현실이 대내외적으로 암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암담한 현실을 염려하며 하나님을 찾는다.

여럿이 목소리를 합해 하나님께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러나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외쳐 요란하고 화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거기에 하나님이 계실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 캐나다 칼튼대 종교학과 교수, 건국대와 한신대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86세로 숨진 고 정대위 박사는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인 중 많은 이들이 ‘주여! 주여!’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저 멀리 하늘 보좌에 앉아 계셔서 반드시 큰 소리로 기도해야 들으실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에 친구나 연인에게 하듯 소근소근 속삭여도 들으시고 응답하실 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란함이 아니라 조용함 속에서 ‘세미한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리는 열린 자세가 아닐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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