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정낙추/‘득도 得道’

  • 입력 2006년 12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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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 속에

한 사내가 있다

꽃 떨어지자마자 봉지 속에 유폐된 사내

얼마의 내공을 쌓았기에

독방에 갇혀서도

부처님 몸빛보다 더 찬란할까

봉지를 벗기자

눈부신 가을 햇살이 황금빛에 튕겨 깨진다

몸 안 가득 채운 단물은

사내의 땀방울이다 그리움이다

세상에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고인

눈물이다

눈물이 매달린 배 나뭇가지 사이에서

사내가

잘 익은 자기 얼굴을 웃으며 따고 있다

- 시집 ‘그 남자의 손’(애지) 중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인물화가 작가 자신을 빼닮는 경우가 있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 아닌 타인을 그렸는데 어떻게 자신의 얼굴이 배어 나오는가? 비단 화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짓는 일에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다고 한다. 도자기 속에 도예가의 숨결이, 글 속에 지은이의 정신이, 과일에 농부의 땀방울이 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것’을 빚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빚는 것이다. 모든 일은 ‘궁극 나에게로 가는 너에게로의 여행’인 셈이다. 당신이 오늘 남몰래 눈물 흘리며 무언가를 빚고 있다면, 내일 ‘잘 익은 자기 얼굴’을 따기 위한 것이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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