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문성해/‘틀니’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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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다.

물 담긴 사기그릇 속에서

흠뻑 웃고 있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저리 신나게 웃는 어머니를,

어금니 사이

푸른 이끼 한 줄,

나 몰래 무슨 즐거움 씹어 잡수셨을까

나는 불안하다

턱이 없는 어머니가

아침이면 턱 안에서

굳게 갇힐 웃음이,

턱을 빠져나온 웃음이 밤마다

목욕탕을 뒤흔든다

저 웃음을 어머니 턱 안에서

완성시켜드리고 싶다

― 시집 ‘자라’(창비)중에서》

믿을 수 없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가지런히 빛나는 저 웃음. 시리디 시린 냉수 속에서도 활짝 웃는 저 웃음, 웃을수록 오히려 섬뜩하다. 얼마나 많은 치통과 충치의 나날과 바꾼 모조 웃음인가. 하나 둘 옥수수 알 발려 먹이듯, 세월과 자식들에게 내어준 치열이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다. 웃어도 대문니부터 어금니까지 한꺼번에 웃는 저 웃음. 달그락거리는 틀니일지언정 부디 남 몰래 씹어 잡수실 즐거움 끊이지 않기를. 틀니쯤 벗어던지더라도 오물오물 만두피 같은 입술 새로 터져 나오는 웃음 그치지 않기를. 딱딱한 뼈의 웃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살과 근육의 웃음을 되찾으시기를. 오월 불효들 올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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