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제”

  • 입력 2004년 9월 2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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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산 작 ‘생명-달’(2003)
남궁산 작 ‘생명-달’(2003)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 일 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중에서

세상의 모든 모난 밥상을 두레상으로 바꾸자고 할까? 예로부터 모난 자리 앉으면 미움 받는다 했거늘 어쩌면 우리들 모나고 각지고 뾰족한 마음이 모난 밥상 탓은 아닐까? 먹은 대로 살이 가고, 먹은 대로 마음 가지 않을까? 두레상은 위아래 자리 차별 없이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둥근 밥상이다. 모난 밥상은 앉은자리 따라 반찬이 다르지만 두레상 앞에서는 누구나 숟가락 앞에 평등하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기 탓에 ‘한가위 한파’ 소리가 들려온다. 선물 보따리가 줄고, 제수(祭需) 걱정들을 하지만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두레상처럼 둥근 한가위 달이야 변함이 있겠는가. 추석은 ‘이전투구의 밥상’으로부터 ‘두레밥상’으로의 귀환이다. 온 가족, 온 친척, 온 마을 사람들 둥글게 모여 앉아 꽃두레판을 이루자. 세상의 모든 모난 구석 일일이 나무망치로 두들겨 둥글게 펼 수는 없더라도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저마다 넉넉한 두레마음 가지고 돌아가면 험한 도깨비 세월쯤이야 왼씨름으로 넘기지 않겠는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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