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대흠,“이중섭의 소”

  • 입력 2004년 7월 25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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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소

이대흠

자신의 뿔로 들어가기 위해 소는

뒷다리를 뻗는다 서귀포에서 부산에서

뿔로 들어가 단단한 힘이 되어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리, 소는 온몸을

뿔 쪽으로 민다 소의 근육을 따라 툭툭

햇살은 튕긴다 앞다리 들어 펄쩍

들어가고 싶다 소가 뛰면

뿔도 뛴다 젠장 명동에서 종로에서

뿔로 들어가고 싶은데 뿔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참을 수 없어 소는

속력을 낸다 뿔은 또

멀리 달아나고 뿔로 들어가고 싶어

소는, 나는

일생을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일생을 뿔로 들어가서 마침내 뿔이 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이냐. 벽걸이 장식용 아프리카 물소의 위풍당당한 뿔을 보면 과연 뿔이 관(冠)이요, 뿔이 명예로구나. 살아생전 덩치 큰 물소의 어깨며, 발굽이며, 엉덩이며, 수천 마리 파리 떼를 쫓던 꼬리는 간 데 없는 걸 보면 소는 죽어서 뿔을 남기는구나. 그런데 과연 온몸이 뿔인 소는 뿔인가 소인가. 뿔은 저 홀로 들이받지 못하니 힘찬 네 굽이 있어야 하고, 네 굽은 네 무릎과 둥근 어깨와 씰룩거리는 궁둥이가 있어야 하거늘 일생을 뿔로 들어가서 뿔이 되는 것은 불구가 되는 일이 아니냐. 불멸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유아독존이냐. 썩어서 거름도 되지 못하는 저 오만한 뿔은 오래도록 먼지 이고 있다가 발길에 채일 뿐 아니겠는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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