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美 어린이는 닥터 수스의 책을 보며 자란다

  • 입력 2003년 5월 22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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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시립도서관에서 한 소녀가 닥터 수스의 책을 여러권 꺼내들고 있다. 맨 앞의 ‘네가 갈 곳’은 4년반째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어린이 그림책 부문) 리스트에 들어있다.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시립도서관에서 한 소녀가 닥터 수스의 책을 여러권 꺼내들고 있다. 맨 앞의 ‘네가 갈 곳’은 4년반째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어린이 그림책 부문) 리스트에 들어있다.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미국의 크고 작은 서점의 어린이 책 코너엔 닥터 수스(Dr. Seuss)의 책만으로 꽉 찬 서가가 있다. 시립도서관의 그림책 코너도 마찬가지다. 그가 쓰고 그린 동화책은 44권. 거의 모두가 베스트셀러다.

15개 이상의 국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2억권 이상이 팔렸다. ‘녹색 달걀과 햄(Green Eggs and Ham)’은 영어문학분야에서 세번째로 많이 팔린 책이다.

‘네가 갈 곳’(Oh, the Places You'll Go·랜덤하우스)은 지난주에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아동도서부문 1위였다. 무려 247주째, 4년반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은 여덟 살 이상 어린이용 동화지만 뉴욕 타임스가 표현한대로 ‘인생을 헤쳐가는 어려움들’을 그린 인생론이기도 하다. 글자도 많지 않은 48쪽의 그림책은 “네가 선택해서 새로운 길을 가보라”고 권한다.

닥터 수스의 말대로 넓은 야외로 나가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다. 풍선을 타고 하늘로 간다. 이크크, 잘 나가다가 풍선이 나무에 걸렸다. 슬럼프도 있다. 거기서 벗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헤매다보니 표지판이 없는 밤길이다. 어디로 가겠니. 또 선택해야 한다. 꾸불꾸불 한참을 가면 이젠 대기실이다. 여기선 누구든 기다려야 한다.

그곳을 빠져나오니 경쟁터인 모양이다. 즐겁게 놀면서 점수도 따고 이겨야 할 경기도 있다. 이기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유명한 사람이 된다. 질 때도 있다. 때로는 순전히 혼자뿐이다. 무서운 길을 혼자서 가야 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닥터 수스는 말한다. “그래서 너는 성공할 것 같니? 그래. 정말이지 너는 해 낼 거야. 98.75% 보증하지. 꼬마야, 이제 산을 움직여 보거라.…오늘은 너의 날이다.…길을 떠나보렴.”

닥터 수스의 본명은 테오도르 수스 가이젤. 1904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독일계다. 유머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신문 잡지의 만평과 광고제작 등에 종사하다 어린이 책의 삽화를 그려 인정 받게 된다. 고향 풍경을 그대로 표현해놓은 첫 동화책 원고는 출판사로부터 27차례나 되돌려 보내졌지만 1957년에 나온 ‘모자 쓴 고양이(The Cat in the Hat)’ 등 성공작으로 확고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닥터 수스의 작품은 텔레비전 특집물 11편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직전 TV로 즐기는 미국 어린이들의 필수작품.

그의 동화책은 소리 내어 읽으면서 발음을 연습할 수 있도록 리듬과 운(韻)이 맞춰져 있고 글읽기 단계별로 여러 종류가 나와 있어 유아원 교육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닥터 수스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각각 두개씩, 피바디상과 퓰리처상을 하나씩 받고 1991년 세상을 떴다. 내년은 닥터 수스의 탄생 100주년으로 인근에 살던 그로부터 많은 책을 기증받은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대학(UCSD) 등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미국이 전쟁에 나설 것을 짐작했는지 그가 1984년에 쓴 동화 ‘버터 전쟁 책(The Butter Battle Book)’은 무기개발에 열을 올려 마침내 핵전쟁의 공포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그 대결의 시작은 별 것도 아니었다. 장벽을 사이로 한쪽엔 유크족이, 건너편엔 주크족이 살았다. 유크는 빵의 위쪽에 버터를 발라먹었고 주크는 ‘무시무시하게도’ 집집마다 빵의 아래쪽에 버터를 발라먹었다.

유크의 한 할아버지는 장벽으로 손자를 데리고 가서 설명했다. “버터를 빵 아래에 발라먹는 주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니. 그래서 나는 젊어서 국경수비를 맡았단다. 순찰을 돌던 어느날 반이치라는 건방진 주크가 새총으로 내 회초리를 부러뜨렸단다.”

이렇게 버터 전쟁은 시작됐다. 유크족 본부가 개발한 3연발 새총을 들고 의기양양해진 할아버지는 주크의 반이치에게 겁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주크는 주먹만한 돌을 쏠 수 있는 현대식 새총을 개발한 것이 아닌가. 유크는 이에 질세라 폭탄을 개발해 개에 싣고 국경으로 가보니 주크는 코끼리에 실은 대포로 맞섰다. 유크와 주크는 비행기 대결에 이어 가족들을 모두 지하대피소에 몰아넣고 난 뒤 국경에서 만나 ‘여차하면 터뜨리겠다’고 서로 협박하고 있다. 유크족의 할아버지와 주크족의 반이치 손에 들린 것은 ‘빅보이 부메루’. 바로 핵무기다.

홍권희기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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