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⑤]유식 떠는者 오래 못가지

  • 입력 2002년 10월 14일 18시 16분


세상엔 유식을 떨면서 오리가 궁둥이 돌리듯 하는, 고약한 말을 잘 하는 인간이 수두룩하다.

조선 왕조의 선조 시대에 허 아무개란 관리가 있었다. 그는 동지중추부사라는 고관 대작으로 남 깔보는 것만큼 제가 잘나게 되는 걸로 여기고는 거드럭거렸다. 갈수록 태산으로 그 꼴에 주색잡기를 탐했다. 지방 관찰사를 지내면서 하는 짓이 여인네와 놀아나는 일이었다. 온 고을 안에서 뇌물은 온통 그 여인네의 치마 자락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그가 행차할 적에 유녀(遊女)도 동행했다.

혹 가까운 사람이 나무라면 궤변을 떨었다. “내 여색을 탐함이 아니로세. 민심을 살피는 정보원으로는 거리의 여인만큼 좋은 게 없어서 그러는 거지!”

그러다가 드디어 그는 파직되었다. 모르긴 해도 받아 챙긴 뇌물을 적어 둔 ‘기생 파일’이문제 된 것 같다. 그가 경상감사를 하고 있을 적에 진주의 한 선비가 수령의 정사를 비방한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수령이면 민(民)의 상(上)이로다. 한데 네 이 놈, 선비란 게 그 이치도 모르고 상을 욕보이고자 했으니, 역신(逆臣)에 버금해서 네 놈 죄를 내가 다스리겠노라.”

이런 식의 억지 논리를 펴서는 옥살이를 시켰다.

그는 평소에 기생에게 속바지 없이 치마만 걸치게 했다. “저 여인들 발 아래를 유심히 살피다 보면 내 아래 백성들 동정도 잘 살펴진다네”라고 둘러댔다. 이 일화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자, 이황 선생이 한 말씀. “그 자는 책 읽지 않고, 머리 나쁘고 말재주 부리지 않았더라면, 착한 사람이 될 법도 했는데….”

오죽했으면 그 점잖은 이황 선생이 빈정거림의 익살을 부렸을까!

부인이 식당을 해서 번 돈으로 당원들에게 거금의 정치자금을 댔다는 정치인의 말은 또 어떨까? 이런 말재주꾼이 요즘도 있음을 알면 허 아무개는 크게 명복(冥福)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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