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퇴임하는 강석진 한국GE 회장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6시 08분


강석진 GE코리아 회장./신석교기자
강석진 GE코리아 회장./신석교기자
몇 번 들어가 본 사무실인데도 여전히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큰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사무실이라면 번쩍번쩍한 사무기기에 잘 정돈된 책상이 일반적인데 그 방의 책상 탁자 창문틀에는 온갖 책과 서류들이 널려있다.

“원래 챙기는 데 소질이 없어요. 지저분해 보이지만 나는 어디다 뒀는지 아니까 필요한 자료는 기가 막히게 찾죠. 비서가 한 번씩 정리하면 잘 못찾아요.”

9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강석진 한국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강 회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CEO’로 꼽힌다. 22년 동안 한국GE를 맡아온 한국 내 외국기업 최장수 CEO 때문이라서 만은 아니다. 1981년 종업원 10명에 매출 260억원이었던 한국GE는 2002년 현재 종업원 1100명에 매출 4조원, 계열사 17개를 거느린 대기업이 됐다. 회사 성장에 CEO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그가 이 달 말로 GE를 떠난다. 이유는 “미술에 전념하고 싶어서”다. 경영자로서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화가로서, 대학교 초빙교수로서, CEO 컨설턴트로서 1인 3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부재 경영’을 통한 후임자 찾기

그가 한국GE의 CEO 생활을 한 22년은 잭 웰치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웰치 전 회장이 은퇴한 지난해 10월 강 회장도 본사에 2002년 말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GE와 함께 한 30여년 동안 경영 이외에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미술이었다. 어느 핸가 한국을 방문한 웰치 회장이 차 안에서 ‘나보다 먼저 GE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해 약속을 한 뒤부터 미술에 대한 꿈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웰치 회장의 퇴임 프로그램은 3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후임자로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을 비롯해 제임스 맥너니 주니어 GE 항공엔진 사장, 로버트 나르델리 GE 파워시스템스 사장 등이 물망에 올랐고 3년간의 경쟁 끝에 이멜트 회장이 선택됐다.

이 시기에 맞춰 강 회장도 내심 자신의 퇴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었다. GE에서는 매년 한 번씩 인사평가회의를 할 때 자신의 후임자를 반드시 추천하도록 돼 있다. 최근 3년 동안 강 회장은 이채욱 현 한국GE 사장을 계속 추천했다. “꼼꼼하고 추진력이 있으며 회사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게 이 사장에 대한 강 회장의 평가였다. 본사에서도 이 사장의 경영성과가 뛰어났다는 평가를 수년간 내렸다. 올 5월 이 사장이 취임했고 강 회장은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삼성 출신인 이 사장은 89년 삼성GE 의료시스템 사장으로 GE와 인연을 맺었다. 96년 GE의료시스템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장을 거쳐 98년에는 한국GE에 합류했다.

“누구든 내 후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몇 년간 ‘부재 경영’을 해 본 결과 그가 적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강 회장은 말했다.

부재 경영은 GE의 독특한 시스템이다. CEO가 없어도 간부들이 사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 CEO가 휴가 병가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 기간 중 어떤 임무를 누가 할지를 정해서 위임장을 주고 직원들과 본사 경영진에 이를 알린다. 간부들은 인사를 제외한 경영의 모든 것을 직접 책임지고 해 보기 때문에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테스트할 수 있다.

강 회장은 지난 22년 동안 매년 20일 정도 휴가를 얻어 해외 스케치 여행을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보통은 비상연락망을 만들어 두지만 티베트나 러시아의 오지에서는 한국과 전화연락마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강 회장이 여행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부재경영 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GE와 함께 한 30년

81년 1월 강석진 당시 한국GE 신임 사장은 미국에서 열린 GE 경영자 회의에서 잭 웰치 회장 내정자를 처음 만났다. 그 때 강 사장은 삼성과 의료기기 합작회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웰치 회장 내정자는 강 사장을 보자마자 대뜸 “돈은 벌 수 있는 사업인가”라고 물었다. 한국에는 첨단 의료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지금 시작하면 1위가 되고, 당연히 수익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웰치 회장내정자가 기술에 대한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걱정하자 강 사장은 “사업계획서나 제대로 읽어봤느냐”고 되받았다. 웬만한 CEO라면 비꼬는 질문을 던지는 부하에게 역정을 냈겠지만 웰치 회장내정자는 “그게 확실하다면 사업을 시작하자”며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

도전과 논쟁을 좋아하는 웰치 회장과 적극적이며 낙천적인 강 회장의 첫 만남이었다.

강 회장은 1964년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 제조업체·미국 전자회사 및 투자금융회사·대한전선(대우전자 전신)을 거쳐 74년 GE와 인연을 맺었다. 글로벌소싱, 전략기획, 신규사업 개발 등을 맡던 그는 81년 한국GE의 CEO가 됐다.

“당시 많은 외국기업들은 한국을 단순히 물건을 팔 ‘시장’으로만 평가했기 때문에 일정 목표가 달성되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외국기업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GE와 한국에 모두 득이 된다’고 경영진을 설득했다.”

강 회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실리콘 △의료기기 △조명 사업에서 국내 기업과 합작을 통한 장기투자를 본사로부터 끌어냈다. 항공기 엔진과 발전설비 부문에서 기술협력을 하게 했다.

GE가 삼성항공과 함께 한국 최초로 제트기 엔진 제조공장을 세울 때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공장을 지을 때 강 회장은 협력 기업인들을 이끌고 미국 GE 공장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GE의 기술자들은 한국에 몇년간 상주하며 기술을 전달했다.

“제 5공화국 당시 청와대 경제팀에서 한국과 경제협력을 잘 하는 외국기업 모델로 한국 GE를 꼽으며 다른 외국기업에 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과 GE가 ‘윈윈’한 것이다.”

GE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초 세계화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GE의 경영자 회의석상에서 웰치는 “우리는 더 많은 ‘진 캉’(강석진)이 필요하다”는 말로 난상토론의 결론을 내렸다. 그만큼 강 회장과 한국GE에 대한 신뢰가 돈독했다.

강 회장은 30여년간 외국기업인 생활을 해오면서 한국의 기업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겠다는 국가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배타적 고정관념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한미주둔군협정(SOFA) 개정을 둘러싸고 촛불시위 등 국민감정이 악화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SOFA 개정을 적극 추진했다면 여론이 ‘반미감정’으로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반미감정은 한국 경제와 안보에 절대 이득이 아니다.”

●미술과 함께 하는 제 2의 인생

강 회장은 한국미술협회 소속 작가인 ‘정식화가’다. 개인전과 단체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개인 화실을 마련해 두고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른다.

강 회장이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60년대 후반 미국 전자회사에 근무할 때. 본격적으로 그림에 매달린 것은 한국GE를 맡고서부터였다. 박기태, 고 차일두 화백 등에게 사사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화가’로만 보던 주위사람들도 15년 전 대한미술협회에서 ‘화가’로 받아들인 뒤부터 달리 보기 시작했다

스케치 여행을 다닐 때면 강 회장은 도구 가방에 악기를 함께 챙겨 넣는다. 어릴 때부터 연주해온 클래식 기타, 하모니카 이외에 해외스케치 여행 때 수집해온 전통 악기도 많다. 사탕수수를 잘라서 대롱으로 연결한 페루 전통악기 ‘잠포니아’는 특히 아낀다.

“영화 ‘해바라기’의 주제음악이나 ‘마농의 샘’에 나오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 등을 하모니카로 불면 기가 막힌다. 스케치 여행지에서 화우(畵友)들을 앞에 두고 바람소리와 흙 소리가 묻어 나오는 잠포니아로 연주하면 대자연 속에 있다는 느낌이 비로소 든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하는 예술 활동에도 퇴임 후 그의 시간을 온전히 할애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내년에 뜻맞는 CEO들과 중소 기업, 벤처기업 경영자를 지원하는 컨설팅조직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등 대학강단에도 계속 설 예정이다.

“지금까지 강연을 다니면 많은 CEO들이 ‘6시그마, 워크아웃, 변화가속화 등 GE의 노하우를 우리 기업에 어떻게 적용시키나’를 놓고 상담해왔다. 아이디어가 좋고 열정적이지만 경영 노하우가 적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 화가로서의 생애로 가는 중간 과정에서 해야할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살면서 한 번도 실패할까봐 두려워 했던 적은 없었다”는 ‘청년’ 강석진 회장의 새 출발이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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