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높은 입학문…좁은 취업문 ‘美 변호사’

  • 입력 2002년 9월 5일 16시 21분


서울 오로라법률사무소의 미국 변호사 윤현상씨.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오로라법률사무소의 미국 변호사 윤현상씨.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미국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외국인이라도 변호사 시험(Bar Exam)을 통과할 경우 해당 주 변호사자격증을 준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직장인, 대학생들은 미국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다.



한국기업의 글로벌 경영, 시장개방이 계속되는 한 글로벌스탠더드의 큰 테두리를 제시하는 미국 법을 숙지한 전문가들의 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서다.

국내의 미국 변호사 지망자들이 보편적으로 택하는 코스는 일종의 수학능력 시험인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를 치른 후 로스쿨(법과대학원)에 입학해 JD(Juris Doctor) 학위를 얻는 것. 이후 주별로 실시하는 변호사시험을 치른다.

10월6일 서울 경기대에서 치러질 LSAT를 앞두고 대학가 어학원 등지에서 공부 중인 미국 변호사 지망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자격증 소지자들은 대개 국내 로펌이나 대기업에 취직해 한국과 외국기업간의 소송을 맡거나 해외기업과의 매수 합병 때 법적 조항을 검토한다. 국제기구나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 출발 전부터 나오는 낙오자

미국 뉴저지주립대 로스쿨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서장석씨(31)는 요즘 통상 3년 과정인 로스쿨을 2년반 만에 마칠 수 있게끔 바쁘게 살아온 것을 다행스러워 하고 있다. 주변에서 “막차가 다가온다. 미국 변호사자격증이 빛을 발할 시기는 앞으로 몇 년 뿐”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기 때문이다.

로스쿨 대비 전문 어학원으로 유명한 프린스턴리뷰어학원의 제시 백 학무부장은 “8월 말 현재 수강생 숫자가 지난해보다 20∼30% 늘었다”고 말했다. 수강생의 절반은 직장인, 절반은 대학생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미국 변호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한 곳에만 가입자가 5000명을 넘는다. 카페 회원 대부분은 직장인이지만 개중에는 준비 요령을 묻는 중학생도 있다.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등은 올해 미국 변호사 지망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하거나 공개강좌를 열었다.

그러나 로스쿨 재학생들은 이 같은 수험생 증가추세에 대해 “미국 변호사자격증 획득이 결코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우선 진로의 초입부터가 험난하다. 서울의 명문대 출신으로 지난해 한 전자회사를 그만 둔 A씨(30)의 경우 최근 1년여간 2차례 치른 LSAT 성적이 좋지 않자 로스쿨 입학의 희망 자체를 접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LSAT는 2년 내에 3회 이상 볼 수 없는 데다 그나마도 ‘누적 평균 점수’를 로스쿨에 제출하게 돼 있다”며 “가장 잘 나온 성적을 제출하는 토플등과 달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낭패”라고 말했다.

제시 백 학무부장은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 2년 이상씩 LSAT를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LSAT는 GRE보다 상당히 어려운 수준이다. 약 180개교에 이르는 미국 로스쿨들이 요구하는 성적은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컬럼비아 뉴욕대학(NYU) 등 ‘빅 5’의 경우 180점 만점에 170점 이상, 조지타운 등 랭킹 15위권은 165점 수준이다. 한국에서 LSAT 시험은 연간 2, 6, 10, 12월 4차례 치러진다.

시험이 한 차례 있을 때마다 희망을 키우는 이가 있는 반면 꿈을 접는 이들도 나오는 것이다.

● 로스쿨의 살벌한 경쟁

로스쿨에 입학한 후 한국인들이 부닥치는 현실은 ‘부족한 정보’와 ‘살벌한 경쟁’이다. 뉴저지주립대 서장석씨의 경우 정보부족으로 학교를 옮겨야했다.

서씨는 2000년9월 미국 미시간주립대 로스쿨로 진학했다. 그러나 미시간주는 외국인에게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을 주지 않고 있었다. 서씨처럼 정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미시간주립대에 온 한국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차피 우리가 응시할 곳은 뉴욕주와 뉴저지주니까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해나갔지만 그게 아니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가르치는 기본법 과목의 상당 부분이 미시간 주법(洲法)과 거기 관련된 판례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씨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뉴저지주립대로 편입하는 길을 택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씨의 1학년 성적이 좋았기 때문. 서씨는 “1학년 성적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서울의 한 어학원에서 1학년 과정 공부를 해둔 게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 오로라법률사무소의 미국변호사 윤현상씨(33)는 “로스쿨 1학년 때 성적은 2학년 여름방학 동안 어느 로펌에서 견습할 수 있느냐를 좌우한다”며 “이는 졸업 후 진로와도 관련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1학년 때는 미국 법률을 중심에 둔 사고 체계인 이른바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익히는 시기여서 한국에서 곧장 건너온 이들은 적응에 애를 먹곤 한다.

이같은 이유로 어느 정도 준비를 해간 서씨도 1학년 시절 오전 2∼3시까지 공부하다가 오전 9시경 수업에 나가야 했다. 서씨는 수업을 제외하고도 하루 10시간 안팎 공부하는 생활을 1년 하고 나니 “아예 질려 버려서 삶의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미국 변호사는 “로스쿨 중도포기자는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1%에서 최대 50%까지”라며 “석차를 대자보처럼 내거는 로스쿨도 있다”고 말했다.

● 쉽지 않은 취직

5월 미국 오스틴의 텍사스대 로스쿨을 마친 김봉한씨는 7월 말 텍사스주 변호사 시험을 치른 후 9월부터 미국 내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8월 한달간 ‘입사 전 휴식’을 얻고 나서야 몇 년 만에 한숨을 돌렸다.

김씨같은 경우는 최근 지망자들이 ‘모범 답안’처럼 생각하는 케이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변호사 자격증 만으로도 국내 로펌이나 기업 법무실에 스카우트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미국내 변호사 근무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인 혹은 교포들의 미국 변호사자격증 획득이 크게 늘면서 국내 채용 기준이 높아진 것이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에서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순수 국내파 수험생과 교포가 250명을 넘어섰다. 미국 전역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랭킹 15위권 내 로스쿨을 졸업하는 한국인 혹은 교포들은 매년 100명을 웃돌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로펌들이나 기업들의 미국 변호사 수요는 크게 늘지 않고 있다. 한해 최대 1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웬만한 기업의 경우 실무 경험 없는 미국 변호사를 쓰느니 기존의 법무실 직원에게 영어 등을 재교육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여름방학을 맞은 로스쿨 재학생들을 인턴으로 채용할 때 교포 출신을 더 많이 뽑는 데서도 채용기준 강화는 여실히 드러난다. 교포들의 영어 구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 때문에 로스쿨 단계에서 전문 분야를 뚜렷하게 하려는 이들이 많다.

미국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또다른 과정인 일반 LL.M(Master of law) 과정을 미네소타대학에서 마친 신규진씨(26)는 올해 보스턴대 금융법 LL.M 과정에 다시 들어갔다. 국내에 직장을 얻고 난 뒤에도 살아남을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국내 로펌에 입사한 미국 변호사자격증 소지자가 “아무래도 결격인 것 같다”는 이유로 퇴사 조치를 받은 사례도 있다.

오로라법률사무소의 윤현상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의 화려한 면만 지나치게 부각된 느낌이 있다”며 “지망자들이 무엇보다 자신에게 법학 자체에 대한 적성, 사건을 실증적으로 파고들 만한 자세가 돼 있는지를 따져본 후 출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국 변호사가 되는 과정과 필요한 것들
과정내용비고
LSAT 응시 준비1∼2년 준비어학원 수강료는 대략 1개월당 25만원 안팎
LSAT 응시2, 6, 10, 12월 시험. 객관식100∼101문제, 어휘력논리력 독해력 위주법학 과목과는 크게 관련 없으며 전반적인수학 능력을 테스트
로스쿨 입학 전형LSAT,토플,대학 성적이 필수에세이나 인터뷰를 요구하는 로스쿨도 있음
프리(pre)-로스쿨로스쿨 1학년 과정에서다루는 미국 헌법 민법 상법등 기본법 공부한국내 어학원 및 미국 내 프리 로스쿨을이용할 수 있음. 한국의 한 어학원의 경우3개월간 66만원의 학비
로스쿨 JD 과정통상 3년이며 2년반으로줄일 수 있음. 매 학기15학점 안팎.학비의 경우 로스쿨마다 다름.주립대학의경우 한 학기당 대략 1000만원. 생활비역시 같은 수준. 3년간 다닐 경우 1억2000만원 가량 소요. 장학금 지원은 드물다.
로스쿨 LL.M 과정J.D 과정과는 별개. 통상 1년소요. 한국내 법과대학을마친 이들이 입학할 수 있음. 학비의 경우 JD 과정의 70∼80% 수준.1년간 25∼30학점 . LSAT 성적을요구하지 않음. 상위 대학의 경우 인종별,국가별 인원 배정하는 경우가 흔함.
미국 변호사 시험(Bar Exam)2,7월 시험. 주마다 시험내용이 다름. JD 1학년 때수강하는 기본 법 중심.주마다 합격률에 차이. 첫 응시자의 경우보통 70%가 합격.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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