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기 세상읽기]중국은 내게 '무협'으로 다가왔다

  • 입력 2003년 1월 24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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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범
중국은 내게 무협의 세계를 통해 다가왔다. 나의 꿈을 사로잡은 그 상상의 세계는 중국인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알고,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의무가 되자 독서는 무미건조해졌다. 어느 날 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즐거움과 고통을, 상상과 현실을 보여주었던 책읽기로 돌아가자!”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책이 있는 마을)은 그것을 보여줬다. 1980년대 말 중국 소설계는 현실생활을 있는 대로 환원시켜 현실과 인생에 직면하려 했고 이런 경향을 신사실주의라고 불렀다. ‘직장’은 중국인의 생활 현장을 묘사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것보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죽은 여덟째 아들이 화자인 ‘풍경’이 내 맘을 더 깊이 흔들었다.

‘풍경’의 주인공은 말한다. “모든 성장은 죽음을 위한 것이고 길은 다르지만 도달하는 곳은 같다.…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가는 죽을 때까지도 확실히 판단할 수 없다.”

끊임없이 혁명의 길을 헤매었던 20세기 중국인에게 죽음은 항상 곁에 있었다. 죽음은 부조리한 세계와 산재된 생존 위기, 인간의 추함을 상징한다.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물음이다.

심각하게 고민하면 피곤해져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것이 진행되는 도시를, 지나가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 나는 학생들과 중국을 살펴보고 싶다. ‘중국 도시 중국 사람’(풀빛)은 이를 위한 준비서이다. 넘쳐나는 언어의 향연으로 가득한 이 책은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중국 도시를 맛깔스럽게 차려내고 있어 독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중국을 맘껏 즐기기 위해서는 미리 이 책을 섭렵하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전문가임을 자칭하는 나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올 모든 질문에 즉각 답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그때 다행스럽게도 옛 취미생활이 내게로 돌아왔다. 백과사전 읽기. 요즈음 난 학교와 집을 오갈 때마다 이와나미 출판사의 ‘현대중국사전’을 탐닉하고 있다. 이것은 온갖 것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다. 최근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중국식 ‘군밤’에서, ‘치파오(旗袍)’를 거쳐 우리가 거닐려는 ‘왕푸징(王府井)’ 거리까지. 책을 읽다보면 처음 목적은 사라지고 재미만 남게 된다.

그러면서 10년 전 처음 갔던 베이징(北京)과 최근 모습이 겹쳐진다. 시간의 길이에 비해 변화된 장소가 너무 많다. 이것을 낳은 사람에 대한 책 ‘나의 아버지 덩샤오핑’(범우사)이 생각난다. 1949년 권력을 장악한 뒤 20여년간 대륙을 통치한 중국공산당 1세대는 문화대혁명에서 철저히 비판받았고 세대간 집단간의 충돌은 극심한 폭력을 낳았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 덩샤오핑(鄧小平)은 구세대의 지지로 재기했다. 그럼에도 개혁 개방이 보수파의 비난을 받자 1984년 초 경제특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똥도 안 싸면서 변기를 차지하지 말라”는 발언으로 원로들을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변혁을 짊어질 젊은 지도자들을 발탁하고 구세대를 자문회의에 배치해서 신세대의 과속을 제어하도록 했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은 판타지의 즐거움과 컴퓨터그래픽의 현란한 세계에 빠져 있다. 나는 그들을 비판하며 달콤했던 무협세계를 말하곤 한다. 난 그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상상계가 있고 그곳이 21세기 인류의 유토피아인가보다. 아버지로서 나는, 다만 우리 아이들이 그곳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고 자신의 삶을 찾아내기 바랄 뿐이다.

임상범 성신여대 교수·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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