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밋밋한 그이의 옷장에도 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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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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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담당인 기자의 남편은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솔직히 난처해진다. 바쁜 신문기자 아내를 둔 남편은 그저 편한 옷을 걸쳐 입고 다닌다. 남편이 다니는 대기업의 드레스코드는 명색이 ‘비즈니스 캐주얼’이다. 하지만 그 회사에 가 보니 찍어낸 듯 다같이 ‘국화빵 패션’이었다. 와이셔츠 정장에 넥타이만 생략한 고루한 ‘아저씨 패션’.

그래서 기자는 외국에 다녀올 일이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남편에게 양말 선물을 안겼다. 특히 패션의 디테일이 강한 일본엔 어찌나 예쁜 양말이 많은지…. 도쿄 미드 타운의 한 양말 상점에서는 빨강 노랑 초록 등 총천연색 하트 모양이 그려진 남자 양말도 샀다. 바지 밑단으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남편의 발목에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어느 날 남편에게 ‘하트 양말’에 대한 남들의 반응을 물었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누가 양말을 보나? 어차피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있는걸.” 아직도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할 이 땅의 수많은 남자들을 위해 기자는 남자의 ‘포인트 패션’을 찾아 나섰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 매장.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백화점 남성 매장은 참 많이 바뀌었다. 양가 멋쟁이 아버님들에게 선물할 나비넥타이를 찾아 힘겹게 다니던 시절은 이제 옛 추억이 됐다. 나비넥타이, 애스콧타이(스카프처럼 폭이 넓은 넥타이), 가슴에 꽃봉오리처럼 꽂는 실크 포켓치프, 멜빵, 유쾌한 디자인의 커프스링크, 갤러리에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예쁜 양말들…. 마음만 먹으면 살 물건이 정말로 많았다.

넥타이와 셔츠가 즐비한 남성 매장을 둘러보다가 기자는 한 가지 즐거운 상상도 했다. 남성 팬티와 넥타이 색상을 맞춰보면 어떨까. 빨간색 ‘게스’ 팬티에 같은 색 ‘벨그라비아’ 니트 타이, 티파니블루 ‘캘빈클라인’ 팬티에 같은 색 ‘벨그라비아’ 멜빵. 동행한 롯데백화점의 한 남성 직원은 “민망하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댄디 룩’을 설파하는 남훈 제일모직 매니저는 말했다. “요즘 젊은 남자들의 90% 이상은 직접 속옷을 사죠. 비록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속옷은 혼자만의 비밀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신사들은 클래식한 정장 차림에 빨간 속옷도 즐겨 입습니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국내 브랜드 ‘커스텀멜로우’를 다시 보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코오롱 인더스트리가 지난해 9월 론칭한 이 브랜드는 25∼35세의 남성들을 타깃으로 ‘에지’ 넘치는 각종 패션 소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기자를 비롯한 열혈 팬을 거느린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씨와 협업한 분홍색 남성 셔츠는 군데군데 볼룸 댄스를 추는 남녀를 수놓았다. ‘보이프렌드 룩’을 추구하며 남성 옷을 찾는 여성들의 ‘0순위’ 패션 아이템으로도 대박 조짐!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개성 넘치는 양말과 속옷도 인상적이었지만, 포켓치프로도 활용할 수 있는 땡땡이 무늬의 안대는 정말로 탐이 났다. 내 사랑하는 남자가 지친 하루 중 잠시 눈을 덮었다가 날 만날 때 이 포켓치프를 가슴에 꽂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양말은 전통적으로 영국 ‘폴 스미스’ 브랜드 제품이 패셔너블한 남성들에게 인기 있다. 몇 년 전 이 브랜드의 컬러풀한 줄무늬 양말을 기자로부터 선물 받은 한 남성은 “두고두고 신고 싶어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신는다”고 했다. 이번에 폴 스미스 매장을 둘러보니 빨간색 장미가 프린트된 회색 양말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런데 폴 스미스 양말은 실은 너무 비싸다. 무려 5만 원! 국내 브랜드 ‘니탄’에선 정장에도 쉽게 매치할 수 있는 단색 양말을 9900원, 제일모직 ‘란스미어’에선 흰색 땡땡이 무늬가 있는 베이비핑크색 양말을 1만2000원에 살 수 있다. SPA 브랜드 ‘유니클로’에선 아가일 체크무늬 양말, ‘H&M’에선 사랑의 큐피드가 그려진 천사 또는 별 문양 양말을 2, 3개에 1만 원대에 살 수 있으니 보다 저렴한 쇼핑이 될 듯. 여기서 잠깐. 당신이 본격적인 양말 쇼핑에 나선다면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심심찮게 보게 될 것이다. 보온 시설이 부족하고 기온이 변화무쌍한 근대 영국에선 정장에 무릎길이의 양말을 신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바지 밑단으로 속살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굳건한 공감대가 있었다. 남성들이여, 당시 영국 신사가 된 기분으로 한 번쯤 긴 양말을 시도해보면 어떨지.

국내 브랜드 ‘예작’에는 흥미로운 포켓치프도 있었다. 흔히 손수건 모양의 포켓치프는 모양을 잡아 가슴에 꽂아도 헝클어지기 십상이다. 이 브랜드는 아예 형태를 만들어 가슴에 꽂기만 하면 되는 포켓치프를 내놓았다. ‘클리포드’와 ‘브룩스 브라더스’의 나비넥타이를 포켓치프처럼 가슴에 핀을 달아 꽂는 것도 위트 있는 스타일이 될 듯했다. 폴 스미스에는 당구대 모양의 유머 넘치는 커프스링크도 있다.

여성 눈에 한없이 예쁘게 보인 패션 소품들을 골라 촬영한 뒤, ‘정작 남성들은 어떨까’란 의구심에 옷 잘 입기로 소문 난 남성들에게 물었다. 이런 소품들을 어떻게 매치하면 좋을까 하고. 스타일리스트 황의건 씨는 “양말이야말로 패션 센스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평소 바지 밑단을 복사뼈까지 오게 수선해 양말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금 단추가 달린 네이비색 블레이저와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입었을 땐 갈색 로퍼에 노란색 양말을 신는다고 한다. 강렬한 원색의 줄무늬 양말은 엄격한 정장에는 피하고 워싱이 많이 된 진 바지에 매치한다고. 꽃무늬 양말이라면 빨간색 바지를 입겠다고 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카디건을 입었을 땐 실크 애스콧타이나 포켓치프로 멋을 내라고 조언했다. 넥타이 대신 스카프 모양의 타이를 매는 것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이유 없는 알레르기 반응도 회피 대상 1호! 올해 트렌드로 떠오른 회색 재킷에는 갈색과 핑크색 넥타이를 딱 허리벨트 선까지 맞춰서 매라고 했다. ‘톰 브라운’과 ‘톰 포드’ 브랜드 등 날씬한 품의 재킷을 멋스럽게 소화하려면 몸매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꽃피는 춘삼월이다. 남성들이여. 당신만의 포인트 패션을 탐험해 보자. 무심한 듯 드러내는 패션 센스야말로 패션 고수의 경지니까. 강약을 얄밉도록 조절하는 연애의 고수처럼.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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