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 기자의 테마 데이트]화장(上)

  • 입력 2002년 2월 28일 14시 22분


/화장 (上)/

이〓‘화장을 짙게 하는 여성들에겐 감추고 싶은 게 있다’는 속설이 있죠. 거친 피부를 감추고 싶거나, 낮과 밤에 따라 돌변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싶거나…. 반대로 여성의 돋보이고 싶은 욕구도 짙은 화장을 만들어 냅니다. 선생님은 밝은 톤의 파운데이션을 짙게 바르시는데요. 선생님에게 있어 화장은 감추기 위한 것입니까,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까?

앙〓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어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흉봐”하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들으며 성장했죠. 가난하던 시대에도 어른들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깔끔하고, 산만하지 않은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사는 삶은 소중하죠. 그건 위선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죠. 여성의 화장은 남성들에게 유혹적으로 다가가려는 목적보다는 주위를 밝고 아름답게 하는 하나의 에티켓, 교양, 문화라고 생각하죠. 화장은 자신의 집을 가꾸는 것처럼 작지만 소중한 우주적인 환경을 일구는 행위의 시작이죠.

이〓우주, 환경, 존재, 세계 그리고 시작….

앙〓화장은 저의 개성이죠. 만일 제가 비서너스맨(businessman·비즈니스맨)이었다면, 전자회사를 이끌어가는 사업가였거나, 공직자였다면 (화장이) 너무 안 맞았을 거에요. 저는 예술인으로서 몸을 통합적인 작품으로 생각하고 관리하죠. 얼굴은 그 중 한 부분이죠.

이〓공직자들도 요즘엔 대민(對民)업무를 위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죠.

앙〓이 기자께서 넥타이 색상에 굉장히 신경을 쓰듯이요. 그렇죠?

이〓선생님의 화장에는 아이섀도나 펜슬로 속눈썹을 정리하거나 립스틱을 사용하는 디테일한 행위가 배제돼 있습니다. 또 파운데이션을 얇게 덧바르는 섬세함도 피하시는데요….

앙〓오우,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하셨네요. 제가 파운데이션을 진하게 바르는 것은 캐머플러지(camouflage·위장)하거나 의도적인 건 아니에요. 또 이 색상, 저 색상 써 봤는데, 최근에는 좀 밝게 했었죠. 저는 내추럴한 화장을 소중히 생각해요. 얼굴이나 눈썹이 너무 헤비(heavy)한 것은 제 자신 쑥스럽고 부자연스러워요. 제 화장은 면, 코튼(cotton)으로 된 제 의상 컨셉트와 조화의 세계를 이루죠. 저는 절대로 실크나 울을 입지 않아요. 예술적으로 보이는 건 원하지만 저는 튀거나 화려하게 보이는 건 소망하지 않기 때문이죠. 실크는 실루엣이 흘러내려 드레시(dressy·화려한)하고 여성스럽게 되구요. 울은 셰이프(shape·형태)가 투박스럽게 뜨고 행동이 자유롭지 않고 언컴퍼터블(uncomfortable·불편한)하죠. 컴퍼터블 앞에 유(u), 엔(n)이 붙으면 언컴퍼터블. 실크나 울로 해 입은 제 모습을 상상하면 ‘아아, 나에겐 절대로 안 맞아’하는 생각이 들죠. 상상이 되시죠? 제 판단이 맞죠? 저의 화장은 헤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의상과 조화를 이루는 연장선에 있죠.

이〓‘화장’이란 단어의 그리스 어원을 좇아올라가면, 용모를 자연스럽고 위생적으로 보존하는 ‘코스메티케’와 화려한 치장인 ‘코모티케’로 나뉘죠. 선생님은 결국 ‘코스메티케’를 추구하시는 거군요.

앙〓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화장품산업을 장려했다고 하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여성의 화장은 전장으로 나가는 남성들에게조차 꿈과 용기와 죽음도 불사하게 만드는 판타지와 무모하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도발심리를 심어줬던 거죠. 화장은 하이틴에겐 성숙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고, 성숙한 여성들에겐 젊어보이고 싶은 갈증을 채워주죠. 화장에 따라 30,40대는 7년까지, 50대는 10년까지 젊게 보일 수 있어요.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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