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애국심

  • 입력 2002년 1월 10일 14시 53분


이〓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는 사랑방 손님을 향한 연모의 정으로 번민하는 과부가 나옵니다. 딸 옥희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리비도를 승화시키는 투혼을 보여주죠. 피아노를 치면서 정념(情念)을 다스리는 그녀의 모습에선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터미네이터2’에서의 모성과는 달리, ‘대자연의 어머니’내지는 ‘조국’이 느껴집니다. 물론 그녀의 도덕적 마조히즘이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앙〓가난한 시대에 어머니가 보여준 숭고한, 희생적인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어머니를 사랑하게 했고 가난한 국가를 사랑하게 했죠. 지금보다 조선시대 후기 어머니들의 이메이지(이미지·image)가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형성배경을 기준으로 ‘국가’의 개념에는 △씨족 부족 등 혈연공동체적 기원을 강조하는 ‘Nation’과 △구성원간의 계약과 의무를 강조하는 ‘State’가 있다. 전자에는 ‘모성이 확대된 형태로서의 국가’란 의미가 내포된다.)

이〓저는 28개월 된 딸에게 ‘섬집 아기’‘ABC송’‘옹달샘’과 더불어 ‘애국가’를 반복해 불러줍니다만….

앙〓중도(아들 이름·21세)가 어릴 땐 자주 해외에 함께 갔는데, 한국인으로서 아기가 스스로 존경받도록 가르쳤어요.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이미그레이션(immigration·출입국 관리) 통과할 때는 편하면서도 세일러복처럼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의상을 입는 게 철칙이었죠. 티셔츠만 입히진 않았어요. “Where are you from?” “Which country are you from?” 하면 “We are from Korea!” “We are Korean”이라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말하도록 가르쳤죠. 하지만 “I’m Korean. Korea number one country, OK?”라고 누가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요. 공항사람들도 뒤돌아서면 굉장히 비웃을 거예요. 겸허하면서 성격적으로 한국적인 정신, 에스프리(esprit), 그런 겸손하고 내적인, 깊이있는 미와 아름다운 미덕을 지닌, 또 뻔뻔하고 오만불손한 분위기가 아닌, 다소곳하고 속엔 자신감이 꽉 차 있으면서 겉으로 지성적인 분위기를 은은하게 발산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이〓영국의 전위적 패션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은 “대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오직 성교를 위해 옷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일부 인류학자는 의복의 존재 이유가 이성에게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번식’에 성공하기 위함이지 몸을 감추기 위함은 아니라고 주장해요. 추상적인 애국심을 패션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동물학자 앤더스 몰러의 실험에 따르면, 수컷제비의 꼬리에 여분의 꼬리털을 인위적으로 붙여 치장을 강화한 결과 자연상태의 수컷보다 암컷과의 짝짓기 확률이 더 높았다.)

앙〓남녀간 사랑은 패션만의 문제가 아니죠. 그렇죠? 10대의 풋풋한 사랑, 20대의 성숙한 사랑도 있고요. 결혼을 한 다음 아기가 탄생하면서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식적이죠? 옷에는 품위 있고 동양적인 터치가 묻어나야죠. 어떤 외국 브랜드 백을 꼭 들어야 된다는 식은 인터내셔널하기보다는 천박해 보이죠. 한국적인 문양이나 선이 꼭 들어가야 한다기보다는, 개성과 지성미가 스며 있는 반듯한 의상에서 가정과 가족을 위하는 이메이지가 묻어나오고, 가정을 위하는 애틋한 풍모에서 국가가 소중하게 느껴지죠.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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