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의 현장체험]'클럽 프렌즈' 파티에 가보니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6시 38분


코멘트
음료수 한잔을 놓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파티 참석자들. 약간의 어색함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파티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음료수 한잔을 놓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파티 참석자들. 약간의 어색함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파티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모델 같은 남녀, 멋진 음식, 화려한 이벤트를 바라고 클럽 파티에 오셔서 실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 활용해야 지요.”

파티는 이렇게 워크숍부터 시작됐다.

처음 참가하는 회원들을 위해 파티의 의미와 매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다.

점차 확산되는 파티 문화. 모르는 사람에게는 돈과 허영이 충만한 사람들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로 인식되는 곳. 거기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도심 속의 사교모임을 표방하는 클럽 프렌즈(Club Friends)가 매주 개최하는 한 파티에 그럴듯하게 스며들었다. 왜 스며들었냐고? 이날의 파티 콘셉트가 ‘Spy in Love’이니까.

●Difference?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노블레스 홀에서 열린 파티. 입구에서부터 어깨가 완전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눈에 띈다.

‘이거 너무 초라하게 입고 온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차림은 거의 회사 관계자들뿐이다. 참석자들은 대개 깔끔한 평상복이나 정장 차림. 잠바나 스웨터 차림도 상관이 없다. 일하다가 그냥 온 사람들도 많다.

부유층이나 모델들만 올 것이라는 생각도 큰 착각. 입구에 붙어있는 참석자 명단으로 짐작컨대 직업, 연령, 결혼여부, 소득, 외모 등은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편안히 대화하고 파티 자체를 즐길 자세만 있으면 된다.

40여만원의 연회비와 매번 파티에 참석할 때마다 내는 참가비(6만∼10만원)가 돈이 적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생각한 것만큼 ‘귀족’들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직업 연령 외모 등이 ‘상관없다’는 것은 참석자격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파티장 안에서의 ‘인기’는 그런 것들과 완전 무관하지만은 않다.

파티는 오후 6∼8시 식사시간, 8시부터 와인 파티, 10시반부터 댄스파티 등으로 꾸며지고 자정이 좀 넘으면 정리하게 된다. 언제까지 와야 하는 정해진 시간은 없고 자신이 오기 편할 때 그냥 오면 된다.

끝날 때까지 대화만 할 수도 있고 춤만 출 수도 있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는 중간에 나가도 된다. 식순은 큰 의미가 없다는 말.

어색함을 감추고 그냥 뛰어들었다.

●Let me introduce myself!

한국 사회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멋쩍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대학 때 딱 한 번, 길에서 우연히 본 여자를 쫓아가 말을 걸때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여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웃으며 말 걸면 대개는 세 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 ‘작업’(이 경우는 ‘안녕하세요’ 보다는 ‘저기요’가 많이 쓰인다)이거나 ‘도(道)’에 관심 있거나 ‘미친’거다.

하지만 이곳은 말을 걸도록 ‘멍석’이 깔려진 곳. 물론 주최측의 의도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 좋은 사교모임을 표방하지만 내가 ‘도’에 관심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쓸데없이 남자에게 말을 거나?

다른 사람들도 대개는 비슷하다.

몇 번을 주저주저하다가 옆에 있는 그런대로 괜찮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정확히는 그녀에게 파티설명을 해주고 있는 직원에게 뭘 물어보는 척하며 스며들었다.)

약간은 어색한 상태. 약 50∼60cm의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시작된 대화.

초보건 선수건 으레 하게 되는 첫마디. “파티 처음이세요?”

그때 옆에 있던 직원이 불쑥 한마디 한다.

“여성분은 결혼하셨고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나도 ‘도심 속의 편안한 사교모임’을 표방한다.

그런데 유부녀라니….

조금 있다 가려고 했는데 의외로 대화가 잘 풀렸다. 근데 이게 뭐람?

알고 보니 대학 후배다. 게다가 직장 후배의 친구…. 갑자기 분위기가 편안해지고 친근감이 밀려왔다.

그녀도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허탈감은 깊어졌다.

●White, Blue, Red & Yellow

파티 참가자들은 이름표의 색깔을 보면 파티 참가 경력을 알 수 있다. 처음 온 사람은 이름표가 흰색, 1년차는 파란색, 2년차는 빨간색, 3년차 이상은 노란색이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역시 기혼자다)와 셋이서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데 약간 인상이 좋지 않은 남자 Blue가 불쑥 들어왔다. “좀 끼어도 되죠?”

Blue는 숙달된 조교처럼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

우리 사회에 만연된 병폐가 학연이라는 말은 어디로 갔을까? 나와 그녀들이 공유했던 학연의 친밀감은 한 순간에 힘을 잃고 만다.

Blue가 갑자기 명함을 돌린다. 워크숍 때 분명히 그러던데. 명함은 신중히 돌리라고….

명함 탓일까? 대화만 나누던 자리가 갑자기 연락처를 묻는 상황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아하! 이것이 노하우다.

30여분 지났을까? Blue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저기 입구에서 남자 Red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아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가벼운 눈웃음, 깔끔하면서도 티나지 않는 옷차림, 한마디 말도 없이 자리에 끼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큰 도(道)는 무위(無爲)라고 했던가. Red는 별로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분위기를 깨거나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가끔 미소로 화답할 뿐….

이미 마음을 비운 나는 그저 감탄의 눈길로 바라 볼 뿐이다.

Blue의 ‘말발’에 가끔 포인트를 찍 듯 웃음의 순간을 만들어 주는 Red의 능력을….

그때 한 마리 학이 머리 위를 날았다. Yellow 형님이다!

큰 파티(500명 이상)가 아니면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파티 베테랑.

이곳에서 친하게 된 한 Blue는 “뭐 사교모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작업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고 각자 다 생각이 다르죠. 이곳에서 만나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한 사람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애써 건전함을 강조하지도, 그렇다고 비하하지도 않는다는 그의 말. 그저 서로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그 속에서 각자 뭘 하든지 개의치 않는다는 그의 말이 파티의 성격에 대한 정답이 아닐까?

●Korean Style

자정이 좀 지나면 얼추 자리가 파한다. 기본적으로 파티는 여기서 끝이다. 이후에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2차를 가는 경우도 많다.

한 회원은 “파티는 토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2차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클럽과 관계없이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커뮤니티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른바 서양식 파티 문화의 한국적 접목이다.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큰 파티가 ‘물’이 좋단다. 그래서 큰 파티만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교모임’이라면 굳이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아도 좋으련만 아무래도 ‘짝짓기’ 문화는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이니까.

그렇다고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다. 음성적으로 발달한 우리의 유흥문화에 비하면 이곳은 상당히 건강한 모임이다.

처음 온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요소도 많기는 하다.

유부녀가 파티라는 이름을 빌려 낯선 남자들과 어울리고 40대 아저씨, 아줌마가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춤을 추고 조명 아래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분명 익숙한 모습들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우리의 관념이야말로 진짜 이상한 게 아닐까?

더욱이 그런 고정 관념 속에서 언제나 자신은 쏙 빠져 ‘면죄부’를 받고 남들만 손가락질하니 말이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