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도둑고양이 씨말리기

  • 입력 2003년 2월 13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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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고양이와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쓰레기봉투를 갈기갈기 찢어 놓거나 아기울음과 흡사한 울음소리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등의 고양이 ‘횡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주민 민원이 전국 시군구청에 밀려들고 있다. 서울 시내에는 2만 마리 이상의 도둑고양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서울 양천구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오면 1만원의 ‘포획 보상금’을 주기로 한 방침을 지난달 28일 발표했으나, “‘고양이 파파라치’가 양산될 공산이 크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비난이 거세어지자 수정안을 마련 중이다. 경기 과천시는 예산을 확보해 작년 11월부터 전문가를 고용, 주인 없는 고양이를 포획해 거세 및 불임수술을 해오고 있다. 올해 100마리를 목표로 했으나 한달 여 만에 80마리가 잡혀 조만간 100마리 분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계획. 과천시에는 3000마리 이상의 주인없는 고양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8월 한 주민이 과천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민원 내용.

‘며칠 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귀가 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울다가 주위 분의 도움으로 집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길을 가로막고 서서 비키질 않고 아이를 노려보고만 있었습니다. 밤이면 고양이 싸우는 소리에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저는 과천에 살면서 주민세도 납부하고 각종 세금도 내는데 고양이도 세금 납부하나요? 주민에게 피해만 주는 고양이가 더 이상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해결책을 부탁드립니다.’》

● 도둑고양이의 정체

환경부에 따르면 집고양이(cat)를 제외하고 주인 없는 고양이는 ‘배회고양이(stray cat)’와 ‘들고양이(feral cat)’로 나뉜다. ‘배회고양이’는 집 주위를 배회하며 쓰레기 등을 먹고사는 고양이로 농림부 관할(동물보호법 적용). 반면 ‘들고양이’는 산과 들에서 다른 동물 또는 그 새끼나 알을 먹고사는 것으로 환경부 관할(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 적용)이다. 각각 인간과 다른 야생 동물에 피해를 주는 까닭에 모두 구제(驅除·몰아내어 없앰) 대상으로 지정됐다. 도심에 사는 ‘배회고양이’가 결국 도둑고양이인 셈.

도둑고양이가 들끓자 일선 시군구청 내에서는 처리 책임이 환경관련 부서에 있는지 아니면 농림(가축)관련 부서에 있는지를 두고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환경부는 인가로부터 △300m내에 사는 고양이를 ‘배회고양이’ △300m 밖에 사는 고양이를 ‘들고양이’로 구분하는 ‘들고양이 구제 및 관리지침서’를 2001년 10월 마련했다. 그래도 전담 부서를 두고 일어나는 다툼은 완전히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고양이 중 상당수는 인가에서 1∼2㎞ 떨어진 야산에 살면서 밤이면 인가로 내려와 ‘행패’를 부리다 새벽녘에 돌아가는 ‘헷갈리는’ 행동 패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인 없는 고양이를 잡아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은 없다. 특히 환경부장관이 ‘유해조수’로 지정한 ‘들고양이’는 관할 시군의 허가를 얻으면 언제라도 잡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배회고양이’(도둑고양이)의 경우 ‘합리적인 이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된다’는 동물보호법 상의 동물학대 금지 규정이 적용된다.

도둑고양이를 잡아 도살하거나 안락사 시켰던 시군구청들은 동물보호단체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최근 불임시술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도 ‘교미의 기회를 막아 고양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불임시술을 통해 욕구 자체를 없애는 것’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광주 북구청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후인 2000년 도둑고양이 포획 사업을 공공근로 사업 대상으로 지정해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 고양이잡이 전문가

경기 과천시의 의뢰를 받아 도둑고양이를 잡는 포획 전문가 김명호씨(41)를 7일 만났다. 김씨는 1990년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에 애완동물센터를 열면서 고양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도둑고양이로 인한 이웃의 피해를 해결해주다가 5년 전부터 아예 고양이 포획으로 전업했다. 김씨는 재활용 아크릴판과 우유팩을 담아 운반하는 플라스틱 박스를 잘라 만든 포획틀을 스스로 고안했다. 그 속에 프라이드 치킨을 넣어 유인하는 방법으로 작년 11월부터 2월 둘째주까지 3개월간 과천시에서만 120마리의 고양이를 잡았다.

기자〓고양이는 영물(靈物)이라 한다. 잡는 데 애로는 없나?

김씨〓고양이는 쥐보다 더 단순하다. 한번 잡혀 불임수술을 받은 고양이가 하룻밤 2, 3번 또다시 잡혀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룻밤 50마리도 잡을 수 있지만 시 예산문제가 있어 하루 5마리씩 주 3회 총 15마리만 잡는다.

기자〓하루 5마리씩을 어떻게 ‘맞춰’ 잡나?

김씨〓하루에 최소 7, 8마리가 잡힌다. 5마리 이상은 그 자리에서 풀어준다. 시 지정 동물병원도 하루 5마리 이상 수술할 여력이 없다.

기자〓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아놓으면 편할 텐데….

김씨〓도둑고양이들은 잡히면 꼼짝하지 않은 채 어떤 먹이도 먹지 않는다. 함께 가둬두면 서로 잡아먹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쉽지 않다.

김씨는 매주 월 수 금요일, 야행성인 고양이가 본격 활동하는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과천시 일대에서 고양이를 잡는다. 주차된 자동차와 벽 사이, 뜯겨진 쓰레기 봉투 주변에 포획틀을 놓는다. 김씨가 잡은 고양이는 당일 아침 시 지정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는다. 암컷은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며 수컷은 고환을 제거한다. 시술에 암컷은 20분, 수컷은 5분 가량 걸린다. 수술 후 고양이들은 인식표를 귀에 달고 하루 이틀 안정을 취한 뒤 다시 잡혔던 지점에 방사된다. 과천시는 김씨에게 고양이 한 마리를 잡는데 2만5000원(유인먹이 및 포획틀 제작비 포함)을, 동물병원에 시술비로 암컷은 15만원 수컷은 5만원을 지불한다.

기자〓거세 및 불임수술 후 고양이들은 어떻게 변하나?

김씨〓교미를 완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어져 삶에 낙천적이 되고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진다. 발정기가 없어져 온순해 지고 울음소리도 거의 없어진다. 식욕이 더 왕성해지는 것은 문제다.

기자〓성기능을 없애는 것은 동물학대 아닌가?

김씨〓인간에겐 성교가 쾌락이다. 그러나 고양이들에겐 의무이자 스트레스다. 거세는 ‘삶의 짐’을 벗겨준다.

김씨는 매달 9개 가량의 포획틀을 분실한다. 노인들이 “고양이가 필요하다”며 잡힌 고양이를 포획틀째 가져가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 김씨는 “관절염 신경통 치료에 고양이가 좋다는 뿌리깊은 믿음을 일부 노인들이 갖고 있다”고 했다.

기자〓과천에 도둑고양이가 많은 이유는?

김씨〓관악산 청계산이 인접해 있어 산에 살던 고양이들이 내려온다. 산에서의 취사행위를 금지한 후 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더 많이 내려왔다. 과천시에는 다세대나 단독 주택이 많아 쓰레기봉투를 집밖에 두는 경우가 많다. 또 주차된 자동차 밑은 고양이의 주 이동통로다.

김씨는 과거 통행금지령 시행이 도둑고양이를 키웠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마땅한 천적이 없는 도둑고양이들이 자정 이후 ‘천국’이 조성되면서 빠른 속도로 증식했으리라는 것.

김씨〓고양이 크기는 집 앞에 세워진 자동차 크기에 비례한다. 과천시 중앙동처럼 에쿠스나 엔터프라이즈 등 대형승용차가 많이 주차된 지역은 잡히는 고양이도 크다. 내놓은 쓰레기봉투 용량도 큰 것이 많고 먹다 버린 음식물량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기자〓암수컷이 골고루 잡히는지….

김씨〓요즘은 약 70%가 암컷이다. 암컷 고양이가 많아졌다. 환경 영향 때문으로 생각한다. 패스트푸드나 오염된 음식 쓰레기를 먹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 삼색(예를 들어 검정, 노랑, 흰색 등) 고양이는 십중팔구 암컷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확인해 보면 수컷도 많다.

기자〓가장 어렵거나 당혹스런 순간은?

김씨〓초등학생 딸이 학교 생활기록부 아버지 직업란에 ‘고양이 사냥꾼’이라고 기입했을 때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잡아다가 파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의뢰를 받아 활동하는 것이므로 ‘사냥꾼’이 아니다”며 설득해도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기자는 7일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고양이 포획 현장에 김씨와 동행했다. 김씨는 포획틀 주변에 믹서로 간 프라이드 치킨 가루를 뿌려 고양이를 유혹했다. 배가 부른 일부 고양이들은 포획틀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오줌을 뿌려 일단 ‘영역표시’를 했다. 1시간 쯤 지난 후 돌아온 고양이가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 닭다리를 앞발로 살살 건드리자 포획틀의 입구가 닫혔다. 잡힌 고양이들은 초기 5분 가량 탈출을 위해 발버둥치다가 이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김씨는 오전 1시 15분 자신의 0.5t 소형트럭을 타고 별양동 향촌 1길의 한 사거리를 지나는 순간 “고양이 냄새가 난다”며 차를 세웠다. 김씨는 “고양이가 많은 곳에는 묵은 햄버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주차된 트럭 뒷바퀴 옆에 포획틀을 놓은 김씨는 5분만에 고양이를 잡았다. 별양동 한 단독주택에서는 고양이의 접근을 막기 위해 뿌린 농약 냄새가 진동했다.

김씨는 이날 과천시 중앙동과 별양동 일대에 15개의 포획틀을 설치, 4시간 동안 9마리를 잡아 이중 별양동에서 잡은 3마리를 그 자리에서 풀어줬다.

● 도둑고양이의 생리

고양이는 온도에 민감하다. 따스해지는 봄과 선선해지는 가을에 발정기가 집중된다. 이 때 집고양이들이 짝을 찾아 가출했다가 침착성을 잃고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들은 교미 후에도 대개 귀가하지 않고 도둑고양이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암컷은 발정하면 안절부절하며 아기 울음소리를 낸다. 발정기는 보통 10∼13일 지속된다. 수컷끼리의 다툼의 90%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임신한 고양이는 수정된 지 60∼65일 뒤 새끼 2∼8마리를 낳는데 6마리가 평균이다.

도둑고양이 관련 민원에 시달리던 경상북도의 한 지자체는 최근 고양이를 대거 잡아 도살했다가 오히려 고양이 숫자가 급증하는 사태를 맞았다. 특정 구역을 장악하던 고양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2,3마리가 진입한 것. 고양이들은 영역 장악을 위해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이지만 일부는 서로 타협, 구역을 나눠 갖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 수가 몇 배로 늘어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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