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민족사관고 유학반 '아이비리그의 꿈'

  • 입력 2002년 4월 25일 15시 15분


올해 국제계열(유학반) 졸업생 14명(조기졸업자 1명 포함) 전원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거나 명문대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한 강원 횡성군에 있는 민족사관고는 올 신입생부터 유학반 규모를 크게 늘렸다. 현재 2학년 72명 중 13명이 유학반인데 비해 1학년은 75명 중 30명이 유학반이다. 최명재 교장은 한국의 대학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해 노벨상을 받을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민족사관고에 민족반(국내대학 진학반)을 유지하는데 대해서는 “당장 유학갈 여건이 안 되는 영재들을 모른다 할 수는 없어서”라고 말했다. 민사고의 중심이 되고 있는 유학반, 그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

●일주일에 영어단어 350개 암기

4월 19일 금요일 2교시 1학년 유학반인 3반의 영어 읽기(reading)시간. 이날 수업교재는 미국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진주(The Pearl)’. 학생들은 영어 읽기 수업을 위해 한달에 2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혼자서 다 읽어왔거나 현재 읽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수업시간에는 바로 토론에 들어간다. 수업은 물론 영어로 진행된다.

“소설에 나오는 어휘들이 ‘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어휘’라고 할 만큼 어렵지는 않죠?”(한일규 교사)

“네.”(학생들)

SAT를 통과하려면 고급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SAT를 준비하고 있는 유학반 학생들은 늘 새로운 영어 단어를 익히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학반 학생들은 1주일에 350개 이상의 새 영어단어를 외우고 월요일에 한번씩 시험을 본다.

요한 크루거 교사와 함께 영어수업을 하는 학생들

“존 스타인벡은 일상적인 쉬운 단어를 쓰면서도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쉬운 단어를 잘 구사하는 것, 작문에서 아주 중요하죠.”(한 교사)

한 교사는 이번에는 ‘진주’에 담긴 알레고리에 대해 물었다.

쉽지 않은 질문인데 이지예 학생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인디언이 진주를 처음 얻었을 때는 큰 행운이 찾아왔어요. 병든 아이를 고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일로 점차 욕심이 많아져서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진주의 색깔이 변하듯이 한 인간의 마음도 선한 쪽에서 악한 쪽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한권의 책을 다 읽고나면 학생들은 시험을 치른다. 한 교사는 얼마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나서 치른 시험지를 보여줬다. 다르마(Dharma), 니르바나(Nirvana) 등의 불교적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라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자체 독립된 개인들이라기보다는 싯다르타의 분신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이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도 있다. 한현민 학생은 이런 답변을 써내 만점을 받았다.

“…예를 들어 고타마는 싯다르타가 되고 싶어하는 궁극적 목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싯다르타의 이름은 고타마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따라서 고타마가 싯다르타의 마음속에 있는 싯다르타의 이상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육체적 관계를 즐기는 아름다운 카말라는 고타마의 정반대에 있는 싯다르타의 또 다른 분신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체육시간의 국궁수업

다음 3교시는 영어 작문(writing)시간.

방한뫼 교사는 ‘인류의 주된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하나씩 뽑아 21세기에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할 지 논하라’는 문제를 냈다.

작문시 주의할 사항도 칠판에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았다. “1.논리적 모순이 없을 것 2. 1인칭을 사용하지 말 것 3.비공식적인 문장으로 서술하지 말 것 4. ‘나는 생각한다’ 등을 사용하지 말 것 5.논지를 지지할 구체적 사례를 들 것 등등.”

실제 시험에서는 20분에 노트 1페이지 가량을 적어내면 되지만 수업시간에는 50분에 1페이지 가량을 적어낸다.

방 교사는 “가끔 학생들이 ‘경첩이 고장났다’를 ‘The hinge is broken’이라 쓰지 않고 ‘The hinge is out of order’와 같이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잘못된 표현을 잡아주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글의 논리적 전개와 관련해서는 “논리적인 글쓰기는 우선 타고난 게 있어야 하고 둘째 책을 많이 읽어야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 유학반의 현재 영어 수업시간은 1주일 전체 수업시간 48시간 중 23시간. 거의 절반이다. 영어는 5명의 교사가 나눠 가르친다. 영어수업의 절반이 넘는 12시간은 비평적 읽기(critical reading). 한 교사(8시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요한 크루거 교사(4시간) 등 2명이 번갈아 지도하고 있다. ‘비평적’이란 말은 단순히 책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책 내용을 놓고 토론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밖에 방 교사가 작문(writing)을 3시간, 전수인 교사가 문법(grammar)을 2시간 지도한다.

도서관에서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역사시간

학생들은 또 다음달 실시될 AP 시험의 영어과목인 국제영어(International English) 준비를 위해 김은미 교사로부터 매주 6시간 듣기 말하기 등을 지도받고 있다.

영어시간에만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1학년 유학반의 경우 아직 국어 국사 등 한국말을 사용하는 수업을 듣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전 수업을 영어로 듣고 있다. 게다가 민족사관고는 EOP(English Only Policy·영어상용화정책)라 해서 평일 기상시간부터 취침 때까지 영어를 쓰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학생법정에 회부해 벌칙을 준다. 따라서 학생들은 극히 사적인 대화를 빼놓고는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에도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학생들은 늘 머릿속에서 어떤 영어 표현을 쓸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1학년 때부터 美 대학과정 준비

1학년 유학반 3반 담임(Academic Advisor)을 맡고 있는 방 교사는 학생들이 작문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최근 본 모의 AP 시험결과를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주고 시험과목 선택에 대해 상담한다.

AP(Advanced Placement)시험은 미국 대학 1학년 과목을 미리 이수하는 제도. SAT와는 달리 꼭 봐야 하는 시험은 아니지만 AP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대학 입학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반면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이 학생이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시험에 도전한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있는 과목이 아니면 도전하지 않는 게 좋다.

AP 시험은 대학 교양과목에 해당하는 만큼 SAT보다 수준이 높다. 따라서 SAT를 보고 나서 공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민족사관고도 작년까지는 2, 3학년 때 응시할 수 있도록 수업시간표를 짜 왔으나 올해부터는 1학년 때부터 응시하도록 전략을 바꿨다. 올해 1학년 신입생의 경우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학생이 90% 정도. 현재 2,3학년에 비해 월등히 해외 거주 비율이 높고 TOEFL 성적도 모두 620점 이상으로 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금을 배우는 음악시간

학교에서는 1학년 유학반 학생들의 조기졸업을 권장하고 있다. 이들이 올 3월 학기를 시작한 일반 고교와는 달리 이미 작년 10월부터 수업을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거의 한 학기 수업을 일반 고교보다 먼저 받았고 그동안 AP 시험을 위해 물리, 화학, 컴퓨터과학, 유럽사, 미시경제, 미적분, 국제영어 등을 공부해왔다. 교재는 ‘AP Physics’(물리) ‘Barron’s AP Calculus’(미적분) ‘The Principles of Economics’(미시경제) 등 국내 대학의 개론 강의용 수준의 영어원서다. 학생들은 “내용이 좀 어렵긴 하지만 어차피 한국어 교재도 우리말로 번역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차라리 원어 교재로 공부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는 반응이다.

이지예 학생은 다음달 미시경제와 국제영어, 컴퓨터과학 등 3과목에 도전할 계획이다. 국제영어는 실용 영어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과목. 이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7년간 영국에서 살아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 국제영어를 택했다. 컴퓨터과학 과목은 민사고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강의가 개설됐다. 이 양은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의 컴퓨터 네트워크 관리를 담당한 경험도 있어 컴퓨터에는 자신있다.

정도현 학생은 미적분과 미시경제 등 2과목만 볼 계획이다. 정군은 초등학교 4∼6학년 때 영국에서 산 경험이 있고 국제영어 화학 물리 등의 강의를 듣고는 있지만 아직 좋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어 올해는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다.

●‘영어 에세이’에 합-불합격 달려

1학년 유학반의 수업은 다음달 AP 시험이 끝나면 SAT시험 준비체제로 바뀐다.

SAT 시험은 SAT 1과 SAT 2로 나뉜다. 필수인 SAT 1은 기본적인 언어능력과 수리능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영어와 수학으로 보면 된다. SAT 2는 과목시험으로 20여개의 과목이 있다. 미국의 괜찮은 대학을 지원할 경우 SAT 2 개설과목 중 3과목 이상을 봐야 한다. 거의 모든 명문대학이 외국 지원자에게 영어작문 시험을 필수로 요구하기 때문에 작문 이외에 2과목을 더 선택하면 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개 수학을 택하고 나머지 하나는 사회 혹은 과학 과목 중에서 택한다.

수학은 한국 학생들에게 쉬운 편이고 사회 혹은 과학 과목은 AP 시험 준비와 거의 겹친다. 역시 관건은 영어다. SAT 2의 작문도 그렇지만 입학원서의 에세이를 잘 쓰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한다.

올해 이 학교를 졸업한 육상현군은 작년 예일대에 특차로 합격해 올 가을 입학을 앞두고 임시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SAT 1에서 1600점 만점에 1520점을 받았다. SAT 2에서는 각 과목 800점 만점 중 영어작문은 720점, 수학은 800점, 생물은 790점을 얻었다. AP과목은 미적분, 생물, 미시경제, 거시경제 등 4과목을 봐서 모두 5점 만점을 얻었다. TOEFL 점수는 663점으로 만점인 677점에 거의 근접했다.

예일대는 입학원서에서 에세이를 특히 중시한다. 작년 입학시험에 주어진 에세이 주제는 ‘살면서 가장 의미있었던 경험’과 ‘너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생활’ 등 2가지.

육군은 첫 번째 에세이를 책 읽기에 관한 문학적인 서술로 시작했다.

‘The scene before me was an archipellago of books(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책들의 군도였다)’.

두 번째 에세이는 밤에 혼자 학교의 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학교생활 3년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했다. 서두는 이렇게 시작했다.

‘As the night wraps her arms around the horizon, the street lamps glow ever brighter, reveal-ing every corner and cranny(밤이 두 팔로 지평선을 감싸면 가로등은 더욱 더 밝게 빛나며 구석구석을 비춘다).’

육군은 미국에 살다 네 살때 돌아왔으니까 사실상 국내에서 생활한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고 듣는 것으로 따지면 외국생활을 많이 한 지금의 1학년 유학반 학생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능수능란하게 문학적 표현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 100권 이상의 영어책을 읽고 작가의 각기 다른 스타일을 모방해서 많은 글을 써본 덕택”이라고 말했다.

●영어공부하는 선생님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영어로 가르치고 평소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민족사관고에는 58명의 교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28명에 이를 정도로 실력있는 교사들이 많지만 영어 전공이 아닌 교사들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민족사관고는 영어담당 교사에게 의뢰해 교사들을 위한 영어학교(KENST)를 1단계에서 4단계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하식 교감은 “현재도 방과 후에 15명가량의 교사가 이 영어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영어 시범강의라는 제도도 새로 도입했다. 각 과목에서 영어로 강의를 가장 잘 하는 교사가 수업을 진행할 때 같은 과목 교사들이 참석해서 듣고 참고하는 제도다.

19일 금요일 4교시에는 김정무 교사의 지구과학 수업이 시범강의로 진행됐다. 과학 과목의 교사 4명이 참석해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다.

pisong@donga.com

▼민족사관고 1학년 유학반의 수업시간표▼

 
1교시애국조회수학수학영어(AP 준비)영어(AP 준비)과학선택
2교시영어(writing)영어(AP 준비)영어(writing)수학영어(reading)과학선택
3교시영어(grammar)영어(reading)영어(reading)영어(reading)영어(writing)영어(grammar)
4교시수학영어(reading)영어(AP 준비)영어(AP 준비)영어(AP 준비)영어(reading)
5교시영어(reading)과학선택사회클럽 활동수학영어(reading)
6교시영어(reading)과학선택사회영어(reading)수학역사
7교시과학선택체육영어(reading)물리사회영어(reading)
8교시과학선택체육음악물리사회학생 법정

▼민족사관고 1학년 유학반의 평일(월~토요일) 일과▼

시간일정비고
오전 6시기상·주중의 공휴일은 평일과 똑같이 진행
·일요일 오후 6시 50분 이전까지는 동아리나
클럽 활동, 오후 6시 50분 이후에는 평일과
같이 진행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 5시 30분 이후
귀가, 일요일 오후 9∼10시경 귀교.
·연중 여름방학 2주일, 겨울방학 2주일
·아침운동 종목에 태극기공도 있으나 외국
대학들이 입학사정 때 잘 모르는 종목이어서
유학반 학생들은 대개 태권도나 검도 유단자를
목표로 한다.
오전 6시 30분체육교사에게 아침문안, 태권도 및 검도
오전 7시아침식사
오전 8시 조회
오전 8시 30분오전 수업(4시간)
낮 12시 20분점심식사
오후 1시 40분오후 수업(4시간)
오후 5시 30분저녁식사
오후 6시 50분자습
오후 9시휴식
오후 9시 30분자습
오후 11시 50분사감교사에게 저녁문안
밤 12시취침
오전 2시강제소등

▼민족사관고 1학년 유학반의 영어리딩(reading) 커리큘럼▼

저자
3월1∼15일Poland James Michener
16∼30일SiddhartaHermann Hesse
4월1∼15일Adeventures of Huckleberry FinnMark Twain
16∼30일The PearlJohn Steinbeck
5월1∼15일Jonathan Livingston SeagullRichard Bach
16∼30일1984George Orwell
6월1∼15일Midsummer Night’s DreamShakespeare
16∼30일HamletShakespeare
7월1∼15일KimRudyard Kipling
16∼30일Wuthering HeightsEmily Bronte
8월1∼15일Richard ⅢShakespeare
16∼30일Tess of D’urbervillesThomas Hardy
9월1∼15일The Great GatsbyF.Scott Fitzgerald
16∼30일The HobbittJ.R.R.Tolkien
10월1∼15일Seize the DaySaul Bellow
16∼30일Tale of Two CitiesCharles Dickens
11월 1∼15일Last Day of SocratesPlato
16∼30일1001 Arabian NightsN.J.Dawood
12월1∼15일MacbethShakespeare
16∼30일Brave New WorldAldous Huxley
1월1∼15일David CopperfieldCharles Dickens
16∼30일The Watch Mark Twain
2월1∼15일Alfred NobelKenne Kant
16∼30일The AwakeningKate Cho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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