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김용택 “섬진강은 흐르고 싶다” 국회앞 1인시위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3시 38분


“어머니의 강 섬진강은 흐르고 싶다!!!”

21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섬진강 시인' 김용택(53·마암분교 교사)씨가 21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시간 동안 일인시위를 벌였다.

두툼한 파커에 운동화 차림의 김씨는 "적성댐 건설안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목에 건 것이 어색한 듯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섬진강에서 서정시를 써온 그가 시위를 참여하기는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그였지만 그간 댐 건설 반대운동에 직접 나서는 것은 삼가해왔다. “남들에게 뻔뻔스러워 보일까봐” 발만 동동 굴렀으나 더 이상 정부의 선처를 바라기에는 사정이 급박해진 것이다

“아이들 수업 끝나자마자 달려왔어요. 더 두고만 보고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여러 차례 청원을 했는데 정부 계획은 이미 확정돼 버렸고, 건설예산안이 국회 예결위에 넘어간 상황이예요. 여기서 못막으면 큰일 날 것 같았어요.”

“국회의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해야겠다는 절박함이 그를 한달음에 달려오게 만들었다. 짙게 썬탠한 검은색 중형 승용차들이 그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갔다.

현장에는 그와 친분이 있는 몇몇 출판인들이 “응원”을 나왔다.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창피할 것 같다”면서 김씨가 응원군(?)을 요청한 것이었다. 동아일보를 비롯해 한겨레신문 전북일보 등 1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김씨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근처에는 ‘섬진강 적성댐 건설반대 순창·임실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회원들도 보였으나 시위는 혼자였다. 일인시위는 집회(集會)가 아니어서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기 않고 모여 흐르며 /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 쌀밥 같은 토끼풀들, /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김용택 ‘섬진강 1’ 중에서)

“법 없이도 산다”는 김씨가 상경투쟁에 나선 것은 바로 2011년까지 건설 예정인 적성댐을 막기 위함이다. 건설교통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전국 댐 후보지 12곳 가운데 김씨 고향 진메마을에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가 포함됐다. 이 지역은 '섬진강' 연작시 뿐만 아니라 창작동화 '옥이야 진메야' 등 김씨의 대표작이 태어난 문학적 젖줄과 같은 곳으로 주말이면 1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댐이 생기면 상류 10km 지점에 있는 우리 마을이 모두 물에 잠겨요. 그러면 주민들도, 아이들도 모두 떠나야 해요. 이미 섬진강댐이 있는데 아랫동네에 댐을 또 막는다면 섬진강의 필터 역할을 해온 이곳이 죽어버리지 않겠어요?”

김씨에게는 자연을 지키는 것이 아이들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의미인 듯했다. 한번도 집회에 나선적이 없어 쑥쓰러워했지만, 지금은 섬진강을 지킬 수 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다. 고향의 서정을 아이들과 나누던 ‘섬진강 지킴이’ 시인이 환경운동의 투사로 변모한 셈이다. 누가 순박하기만 한 시인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 것일까.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적성댐 건설계획은 100년만의 가뭄을 핑계로 지역 주민과는 한 마디의 상의나 설명없이 이뤄진 밀실 탁생 행정의 결과”라면서 “댐 건설을 백지화하라”고 주장했다.

<윤정훈 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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