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노트①/김석수]현실 극복할 '비판철학' 모색

  • 입력 2001년 7월 8일 18시 47분


《‘학문의 위기’를 걱정하는 시대에도 연구실에서 적지 않은 학자들이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학계의 희망인 이들이 자신의 연구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해 학문 간의 소통을 도모해 본다. <편집자>》

가끔 누군가가 당신은 왜 철학을 공부하며, 무슨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쉽게 답할 수 없어 진땀을 흘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흡족하게 답할 수 없었던 아쉬움에 늘 다시 고민을 하곤 했다. 이런 고민은 지금도 여전하며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고민의 와중에서도 내가 철학을 함에 있어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철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문학이 현실을 등지고 순수한 아름다움만 노래하거나 현실의 내용을 단순히 서술하는 데 머물고 있다면 사치스럽거나 천박하다는 비난을 받듯이, 철학이 현실을 등지거나 현실에 매몰될 때 공허하거나 맹목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철학은 언제나 현실과 함께 하되, 그 현실을 바람직한 세계로 인도하는 전망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단순히 현실을 등진 지식의 놀이나 현실의 욕구 구조에 편승하는 권력의 놀이가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는 ‘비판의 놀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권력, 무현실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세계를 사색하는 철학을 하기보다는 이 땅의 이 현실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를 반성하는 철학을 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철학이 그 동안 우리의 현실을 단순히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차원을 넘어 얼마나 비판적으로 대결해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환으로 한국 현대 철학 100년사의 진행 과정을 분석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고, 나아가 21세기 세계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반성하면서 우리의 철학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모색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작업들이 단순히 선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생산적 작업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00년대 초∼2000년 한국 철학자들의 연구 과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해 분석해 왔다.

또한 이런 작업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차이성을 넘어 차별주의로 진행되는 국내외적 현상과 관련해 비판의 철학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지역주의, 혈연주의, 학연주의, 중앙주의, 남북주의로 점철되어 있는 한반도 사회의 모순과 차별이 산출하고 있는 폭력성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의 철학’을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21세기가 안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위력, 과학주의의 위력으로부터 파생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억압구조 및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위적 조작 행위가 산출하고 있는 위기들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작업에 대한 방법론적 돌파구를 칸트의 ‘판단력비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판단력의 정치학, 행위의 정치학과 동양의 중용 사상에서 찾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은 서둘러 차이성을 열어주거나 동일성을 마련하려 함으로써 산출하게 되는 폭력성의 차원을 넘어서 다원성 속에서 통일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중용의 사상과 칸트로부터 아렌트로 이어지는 ‘공통감’의 이론을 21세기 한국 현실과 세계 현실의 갈등을 풀어 가는 기반으로 삼아 보려는 데 있다.

김석수 <경북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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