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원앙이 카사노바라고? 인간이나…동물이나…

  • 입력 2007년 1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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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최재천 지음·378쪽/1만6800원·궁리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다가도 방영 시간에 맞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맥가이버’ ‘모래요정 바람돌이’…. 대부분 오락 프로그램이나 만화여서 TV를 보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부모의 호통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떳떳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이 프로그램이 나오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TV가 전하는 동물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들었다.

백년해로의 상징으로 신혼부부에게 선물하던 원앙이 사실은 아내 앞에서 바람을 피울 만큼 동물계에선 알아주는 ‘카사노바’라거나, 검은색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인식되는 까마귀가 늙은 어미를 봉양하는 효심이 깊은 동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동물의 세계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저자의 책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쉽게 알 수 없는 동물의 세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와 무지를 지적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봇대에 집을 지어 정전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최근 곳곳에서 까치가 포획되고 있다. 그런데 왜 까치가 그랬을까. 그 이유는 인간의 콘크리트 문화가 자연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까치가 전봇대로 내몰렸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자신을 지구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이 빚어낸 문제라는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동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현실이나 시스템을 비판하는 저자의 시각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조류의 수컷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암컷을 많이 거느린 수컷에게 노래를 배운다. 어미 새는 새끼 새들을 다그쳐 나는 법을 가르친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교육은 가르치는 쪽이 주도권을 잡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배우는 대상이 좋아하는 것만 하도록 해서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의미다.

저자에 따르면 살아남은 생물의 종은 우연이 아니라 생존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배워 나간 도전과 응전의 결과다.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저자는 “교육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으며,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며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 청소년들이 측은하기는 하지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국 워싱턴대 시버트 로워 교수팀의 실험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참새의 세계에서는 가슴팍에 검은 털이 많아야 우위를 차지한다. 로워 교수는 작은 참새 한 마리를 잡아 검은색 매직펜으로 가슴을 칠했다. 그 덕분에 이 참새는 먹을 것을 독점하고 무리 속 다른 참새들은 이 참새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몇 번 접촉해 본 뒤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참새들이 이 참새를 쪼아 죽였다. 상대에 따라 동물의 행동이 돌변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일개미 집단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사례다. 여왕개미가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을 비교한 결과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왕개미가 있는 집단은 질서와 안정으로 유지가 된 반면 여왕개미가 없는 집단은 약육강식의 혼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지도자 계급의 출현은, 잘못된 불평등의 역사 단계가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낸 효율적 시스템의 진화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물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줌으로써 동물이 인간의 하위 존재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책에서 보여 준 동물의 세계는 인간 세계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정치와 사랑과 생존 전략이 숨 가쁘게 충돌하는 세계다. 이 책의 매력은 동물의 세계를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자화상이다. 책을 덮고 나면 생생한 사진이 곁들여진 21세기 이솝 우화를 읽은 듯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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