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까마귀를 누가 불길하다 했나… ‘까마귀의 마음’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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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래까마귀는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고독하며, 소리조차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새다. 저자가 새끼 때부터 데려다 키운 ‘골리앗’이 사육장 안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있다.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래까마귀는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고독하며, 소리조차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새다. 저자가 새끼 때부터 데려다 키운 ‘골리앗’이 사육장 안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있다.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 까마귀의 마음/베른트 하인리히 지음·최재경 옮김/608쪽·2만3000원·에코리브르

1993년 4월이 끝날 무렵, 미국 동북부 메인 주의 숲 속.

단풍나무들이 새싹을 틔우려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전나무들이 서 있는 응달진 땅에는 겨울에 내린 눈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얼음은 이제 막 녹았고 첫 번째 휘파람새들이 돌아왔다. 그해 태어난 새끼 도래까마귀들은 검은 깃털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는 가문비나무 높은 곳에 튼 새 둥지에서 아기 도래까마귀들을 데려왔다….

주변의 소리에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는 도래까마귀 한 쌍. 저자가 직접 스케치했다.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나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새끼들은 파란 눈을 반짝이며 눈을 마주쳤다. 새끼들은 머리를 쳐들고 분홍빛 큰 부리를 활짝 열었다. 저마다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도래까마귀들은 나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 어린것들은 내 목소리에서 마음이 놓이는 그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동물을 연구하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도래까마귀는 하루에 260여 km²를 날아다닌다.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고독하며, 소리조차 신비로운 징조로 가득 차 있는 도래까마귀와 친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도래까마귀 새끼들을 자식처럼 돌보며 그네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갔던 과학자의 관찰과 체험의 기록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까마귀의 마음에로의 탐험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냥꾼이었던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 살아왔던 어느 숭고한 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아무리 단순한 동작이라도 그들이 전하는 경이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규정하지 않고 옮겼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메아리칠 것이고, 우리 모두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네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저자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놀라운 행동을 자주 지켜보게 된다. 나뭇가지에 매달린다든지, 눈밭에서 미끄럼을 탄다든지, 거꾸로 난다든지, 공중에서 리본을 토스하며 게임을 즐긴다든지….

도래까마귀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행동양식을 보였다. 자율적으로 행동했다. 그것은 분명 정신과 마음의 발현이었다! “그들은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를 마음속의 이미지로 미리 그려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음의 양상을 짚어내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은 장미 향기나 봄날의 느낌처럼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어떤 것이다. “숲은 무한하고, 마음도 무한하다. 그것은 온전히 캐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소로의 자연주의자의 계보를 잇는 저자. 그는 통나무집에 살면서 매일 숲 속을 거닐고 저녁엔 벽난로 앞에서 글을 썼다. 이 책과 ‘숲에 사는 즐거움’(사이언스북스), ‘동물들의 겨울나기’(에코리브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저자는 눈 밝은 자연의 관찰자이다.

그는 동물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바라보았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자연은 단지 존재할 뿐, 그 경이로움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속에 깃든다고 했던가.

“나는 인간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까운 존재의 세계와 고뇌를 접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나는 또한 여명과 일몰의 순간을 지켜보았고, 눈보라와 폭우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고, 고동치는 삶과 고요한 죽음의 순환을 체험했으며, 새로운 인간의 우애를 발견했고, 오래된 마음의 상처를 잊었다….”

원제 ‘Mind of the Raven’(1999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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