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

  • 입력 2004년 11월 5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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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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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성영신 강은주 김성일 엮음/487쪽 1만8000원 해나무

뇌의 안쪽 중앙 아랫부분에 있는 편도체가 손상당한 쥐는 고양이를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양이의 귀를 물어뜯기까지 한다. 겁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도 뇌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편도체를 자극하면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편도체 부분이 공포라는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뇌의 각 부분이 사람의 심리, 행동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세기가 지나서다. 그 이전까지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따라 뇌는 흥분한 심장에서 데워진 피나 체액을 식히는 냉각장치로만 여겨졌다. 따라서 마음이 자리하는 곳은 당연히 뇌가 아니라 심장이었다.

이 책에서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말과 달리 감성과 이성 모두 뇌의 영역이며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의학과 심리학 전공자 13명이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냈다. 책의 첫머리에는 뇌의 각 부분 명칭과 해부도를 3차원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뇌는 서양인 기준이 아닌 한국인 표준 두뇌 원형이다.

지난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인지신경학과 연구팀은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실험했다. 사랑에 확실히 빠져 있는 사람 17명을 선발해 애인의 사진과 친한 동성 친구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그들의 뇌를 스캐닝했다. 그 결과 애인 사진을 봤을 때 사랑의 감정 척도는 9점 만점에 평균 7.46점, 동성 친구의 사진을 봤을 때는 3.2점을 기록했다. 이때 뇌의 내측 도(島), 전측 대상피질, 미상핵과 피각의 활동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 부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뇌의 특정 부위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위들이 일종의 ‘회로’처럼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즉 뇌의 특정 부분과 인간의 특정 기능 사이에는 1 대 1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책은 또한 뇌에 대한 우리 상식의 허실을 알려준다.

영화 ‘한니발’을 보면 살인귀 렉터 박사가 그와 여주인공 스털링 형사를 괴롭히는 악질 형사의 두개골 윗부분을 절개해 뇌를 스푼으로 떠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 뇌를 긁거나 찌르면 통증을 느낄까? 답은 ‘아니요’다. 뇌에는 통증을 느끼게 하는 통각세포가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고스톱이나 암기 등 이른바 머리를 쓰는 일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일까? 답은 역시 ‘아니요’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뇌의 혈액순환을 도와 산소와 영양소를 적절히 공급해 주는 것이 치매 방지의 최선책이다.

남자의 뇌는 여자의 뇌보다 약 100g 무겁다. 그건 사실이다. 지나친 단순화는 어렵겠지만 남자의 뇌는 공간정보 처리에 능하고 여자의 뇌는 언어정보 처리 능력이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수만년 전부터 남성과 여성이 맡아온 역할에 따라 뇌의 기능이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뇌는 인종과 남녀의 우월을 가리는 ‘못된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뇌의 크기, 무게, 주름 등이 그런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이미 밝혀졌다. 수십억 지구인의 얼굴 모습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듯이 뇌의 모습이 제각기 다른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중요하지만 신비로운 존재로만 여겨졌던 뇌를 친근하게 우리 곁에 데려다준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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