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간 큰 아내, 간 부은 남편

  • 입력 2001년 8월 5일 18시 27분


10여년간 결혼 생활을 한 최모씨 부부. 며칠 전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에 대한 TV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했다.

매일 밤 술에 절어 고주망태가 돼 들어오는 남편과 이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한 아내의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아내와 함께 TV를 지켜보던 남편 최씨.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보다 내심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저런 방송을 해대는거야. 괜히 멀쩡한 가정까지 ‘분란’을 조장할 소지가 있잖아.”

“찔리는 게 많은가보군. 저 남자처럼 이혼 당할까봐 그러는거 아냐?”

“그게 아니라…. 저 여자도 문제가 있지. 남자가 술 좀 마셨다고 바가지를 긁어대면 어디 살 수 있겠어?”

“간이 부어도 한참 부었군. 요즘 세상에 당신같은 남편 데리고 사는 내가 대단한 여자지.”

밤새 ‘가위’에 짓눌린 남편 최씨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미뤄놓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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