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전통 연극의 매력 '인생은 꿈'서 맛본다

  • 입력 2001년 6월 19일 19시 03분


‘스페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페드로 칼데론 바르카(1600∼1681년) 원작의 연극 ‘인생은 꿈’이 7월6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셰익스피어가 ‘포도송이’라면, 칼데론은 ‘포도즙’”이란 찬사를 남겼다.

이 연극은 아들이 폭군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 때문에, 갓 태어난 아들을 감옥에 가두는 바실리오 왕과 그의 아들 지그문트의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에 배신당한 뒤 사랑의 복수에 나서는 남장 여자 로자와, 왕의 충복으로 로자의 생부인 클로탈도의 갈등이 겹쳐진다. 98년 서울국제연극제에서 폴란드 극단에 의해 국내에 초연됐지만 국내 극단이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연극은 꿈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점과 진실의 모호함을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연극에서 지그문트가 강요당하는 꿈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 바실리오는 갇혀 지내던 지그문트에게 잠드는 약을 먹여 성으로 옮긴 뒤 “너는 왕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그문트가 허황된 예언을 알고 난폭하게 행동하자 바실리오는 다시 그를 재우고 이전 상황을 꿈으로 믿게 한다. 4시간 여에 이르는 원작을 2시간으로 압축했다.

스태프의 화려함도 돋보인다. ‘날 보러와요’ ‘집’ 등의 김광림(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이 연출을 맡았다.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작가인 전수천이 무대를, 중견 작곡가 이건용이 음악을 맡았다.

연극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박웅과 전 국립극단 단장 권성덕이 각각 바실리오 왕과 클로탈도로 등장한다.‘교황청의 지하도’에서 공연한 송영근과 김광덕이 지그문트와 로자역에 캐스팅됐고 구혜진 장현성 황석정 등이 출연한다.

가벼운 연극에 식상한 연극 팬들이 모처럼 정통 연극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월∼목 오후7시반, 금∼일 3시반 7시반. 1만2000∼3만원. 1588-7890

▼'인생은 꿈' 연출에 얽힌 사연▼

‘인생은 꿈’은 지난달 17일 55세로 타계한 문호근 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작품. 고인은 경기고 5년 후배이자 평소 가깝게 지내는 김광림에게 직접 이 작품의 연출을 의뢰했다. 문호근은 또 이 작품과 이윤택 연출의 ‘어머니’, 결국 그의 마지막 연출작이 된 ‘교황청의 지하도’를 묶어 ‘토월연극 시리즈’를 기획한 바 있다.

18일 ‘인생의 꿈’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림은 ‘문호근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작품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연출의뢰

“연출 하나 안 할래?”(문호근)

“글쎄요. 작품이 뭔 데요?”(김광림)

“인생은 꿈.”(문)

“인생은 꿈? 그게 뭐죠?”(김)

“칼데론 작품 있잖아? 대본 보낼 테니까 한번 읽어봐.”(문)

#5월2일 연습을 시작한 뒤 예술의전당 로비

“어때?”(문)

“작품 좋아요.”(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야. 내가 하려고 그랬는데 당신한테 준 거니까 잘 만들어봐.”(문)

#‘교황청의 지하도’ 첫 공연 뒤

“(기대에 찬 눈빛으로)공연 어땠어?”(문)

“(무덤덤하게)재밌네요.”(김)

“(눈빛을 반짝이며)진짜 재밌어?”(문)

“(여전히 무덤덤하게)진짜로 재밌어요.”(김)

김광림은 “그때 좋은 작품을 준 것에 꾸벅 절했어야 했고 ‘교황청의 지하도’에 만족한다는 뜻을 확실히 전해야 했다”면서 “감사와 칭찬, 사랑은 절대 보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간담회 분위기가 딱딱해 재미없다며 술을 권한 뒤 “형이 갑자기 가고 보니 정말 인생은 꿈 같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