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비오는 날엔 호박부침개

  • 입력 2001년 7월 23일 14시 22분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7월입니다.

살림이라는 걸 끌어안고 살기 전에는 비가 오면 그저 분위기 잡고 앉아 커피 한잔 홀짝거릴 줄 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빨래가 안 말라 고민. 눅눅한 이불 보따리 걱정.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싱크대 개수구 소독. 거기다 때가 자주 끼는 욕실 청소하랴 옷장마다 ‘물먹는 하마’를 넣어주랴 진짜 짜증납니다. 이젠 비가 와도 하나도 낭만 없고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왜 이런 시련을 저에게~.

비가 오면 습도 때문인지 가스렌지 앞에 잠깐만 서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오니 정말 돌아버리겠습니다. 장보러 나가는 건 또 얼마나 귀찮구요? 아파트 바로 앞 슈퍼마켓에 간다 해도 우산에 장보따리에 이고지고 하다보면 바지자락은 벌써 비에 흥건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비가 오면 어떻게든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해결을 해 보려고 갖은 잔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어느 기사에 보니 우리나라 주부들 양쪽으로 여는 폼나는 대형냉장고도 모자라 김치냉장고에 작은 냉동고까지 두고 산다더군요. 아…제발 먹는 거에 목숨 걸지 좀 마시지. (자랑은 아니지만) 전 504리터 짜리 냉장고도 펑펑 놀리면서 씁니다. 무소유의 쾌감이랄까요? 히히. 이런 썰렁한 냉장고에도 터줏대감은 있으니 바로 애호박과 풋고추입니다. 늘 급하면 된장찌개로 때우다 보니 된장찌개에 자주 들어가는 애호박과 풋고추는 떨어지지 않게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애호박과 풋고추를 송송 썰어넣은 부침개를 부쳐먹죠.

부침개! 이름은 좀 꿀꿀하지만 얼마나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 아닌가요? 나이가 들수록 서양 부침개라는 피자보다는 우리 것이 입맛 당기더군요. 빨그스름한 김치부침개, 해물이 듬뿍 들어간 파전, 오징어가 들어간 일본식 오꼬노미야끼, 달착지근한 호박이 들어간 호박부침개 등등.

잘게 채 썬 호박과 매콤한 풋고추를 넣은 호박 부침개를 부치다 보면 역시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요 놈의 입이 웬수지~.”하지만 따끈따끈한 호박부침개를 초간장에 살짝 찍어먹다 보면 그런 생각은 까맣게 잊고 "한판 더 부쳐먹을까? 말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냉동 새우살이나 게맛살 같은 게 있으면 잘게 썰어서 같이 부쳐도 예술이지요.

제가 비오는 날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는요, 따끈따끈한 호박부침개를 먹으면서 한물간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겁니다. 영화 속 화창하고 달콤한 사랑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꾸물꾸물한 날씨 따위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구요, 삐쭉삐쭉 못생긴 부침개도 멋진 사랑의 요리로 둔갑한다니까요 (제가 좀 단순해서리). 맛있는 부침개와 로맨틱한 영화, 제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비 오는 날 찰떡궁합입니다!

***후다닥 호박부침개 만드는 법***

재 료 : 애호박 반개, 풋고추 3개, 부침가루 1컵, 물 1/2컵, 소금, 식용유

만들기 : 1. 애호박은 깨끗이 씻어 잘게 채썬다.

2. 풋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빼고 어슷 썬다.

3.부침가루에 물을 넣고 덩어리가 없게 섞는다

4. 반죽에 애호박과 풋고추를 넣어 잘 섞는다

5. 팬을 달구어 앞뒤로 파랗게 지진다.

Ps. 전 아무리 생각해도 왜 못생긴 사람을 호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호박보다 못생긴 거 너무 많은데…. 점이 삐죽삐죽나고 길쭉하기만한 오이, 허여멀건한 무, 뻘그스름한 고구마 등등. 동글동글 연한 초록빛이 도는 호박은 오히려 귀여운 편인데. 아마 호박이 좀 귀엽다고 잘난 척 하다가 온갖 야채들에게 왕따를 당한 건 아닐까요? 인간세상이나 야채세상이나 이쁠수록 겸손합시다!

조수영<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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