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문화 우리건축]휴게소와 기차역

  • 입력 1999년 10월 24일 19시 54분


가을은 왔다.

알싸한 아침 공기는 시린 가슴을 파고들면서 두서없이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여행의 기착지는 풍경소리가 들리는 산사일 수도 있고 밤바다가 보이는 호텔 객실일 수도 있다. 무료하게 시계만 바라보던 기차역, 커피 한잔을 위해 잠시 머물던 고속도로 휴게소가 중간의 여정에 끼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건물은 여행과 함께 한다. 그 때 건축은 여행의 설렘과 들뜸을 담아야 한다. 지친 다리를 쉴 의자를 마련해 주고 창문 너머로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산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시대 여행의 대표적 종착지는 정동진이다. 바다, 철길, 국도가 해돋이와 만나는 곳. 해안 경치로 내로라하는 모나코 해안과 미국 서부 몬트레이 해안에 뒤지지 않는 곳.

하루에 몇 번 비둘기호만 서서 승객을 내려놓던 기차역은 이제 지명도로는 전국 최고를 다투는 관광지가 되었다. 새해의 첫 해돋이를 보겠다고 수만 인파가 몰려든다. 역 앞에는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당구장, 횟집이 들어섰고 멀리 산꼭대기에는 범선과 기차 모양 카페가 들어섰다. 건물에는 빨강, 파랑, 노랑색 페인트가, 역에는 분홍색 페인트가 칠해졌다. 길에 늘어선 노점마다 조잡한 모래시계를 팔고 자동차와 사람은 짜증스럽게 서로 섞여 다닌다. 정동진은 그렇게 부서졌다. 처참히 부서졌다.

비난받을 첫번째 대상은 건축가들이다. 건물을 지을 수 있게 관청에 넣을 허가서류 몇 장을 꾸며주고는 발을 뺀 건축가들이다.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곳이 양수리든 미사리든 정동진이든 설계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건축가들이다. 공무원들도 빠질 수 없다. 이 곳이 여행의 종착지가 되고, 전국 최고의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단지를 계획해야 했다. 역 앞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고 안내판도, 안내소도 제대로 디자인했어야 했다. 정동진이 부서지고 있다면 강구도 영덕도 부서진다.

물론 모든 건축가가 다 같지는 않다. 국도가 설악산 한계령을 넘으며 한숨 돌리는 자리에는 한계령 휴게소가 있다. 이 휴게소는 세련된 건축가가 제대로 지은 건물이다. 디자인은 절제에서 시작된다는 원칙을 건축가는 고수했다. 건물의 뼈대인 철골은 검게 칠했고 그 위에 덧댄 나무도 검게 그을렸다. 간결한 모양의 경사지붕은 산 중턱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 건축가는 붉게 번져 오르는 단풍이 눈에 가득 보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자동차의 통행이 많지 않던 시절, 한계령 휴게소는 여행만큼이나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건축가가 본 여행의 의미는 관조였다.

그러나 정동진을 부순 문화는 한계령 휴게소에도 부수었다. 휴게소에서는 ‘쿵자라작작’과 ‘아싸’의 흐드러진 노래가 가득하다. 빼곡히 들여놓은 온갖 물건들은 이미 이 건물이 창고에 지나지 않음을 웅변하고 있다. 설악산도 우리에게는 물끄러미 바라볼 대상이 아니고 마시고 취해 사진 찍을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계령 휴게소도 그렇게 부서졌다.

휴게소는 이렇게 우리의 건축과 여행을 이야기한다. 가장 값싼 재료로 가장 요란하게 짓는 것이 우리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남녀 불문하고 안이 훤히 보인다. 줄서기가 고려되지 않고 배치된 카운터 앞에서는 사람들이 조금만 몰리면 순서도 없이 아우성을 치면서 김밥과 튀김을 주문해야 한다. 식당에는 수납공간이 없어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건물만큼이나 값싸게 녹음해서 파는 음악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목적지에 이르면 세상의 종말이 오리라고 굳게 믿는 듯, 그전에 온몸에 붙은 이승의 업보를 떨어버리려는 듯 통로에 가득 나와 온몸을 흔들던 아주머니, 아저씨를 태운 관광버스가 도착하면 휴게소에는 더욱 무례함이 넘친다. 그래서 우리에게 휴게소 문화는 군기 빠진 예비군 문화다.

부서진 정동진이 서러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서진 한계령 휴게소가 서러운 이유는 건물에 배든 건축가의 꼼꼼함도 일거에 묻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폭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을의 여행에서도 먹고 마시고 사진 찍고 돌아가면 그만인 서글픈 우리의 여행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행이 관광이라면 관광산업은 곧 디자인산업이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고 광고하는 것만으로 관광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쓰레기통부터 안내판, 건물, 그리고 그 주변 경관까지 제대로 디자인을 해야 한다. 관광지가 부서지고 디자인 안된 온갖 구조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면 관광엑스포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외국인 전용출입구라고 따로 만들어놓은 전시장 안에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물어야 한다.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대접하면 그들 눈에 보이는 한국인은 만만한 존재일 뿐이다.

결국 정동진도, 휴게소도 우리 시대의 것이다. 만들었든 부수었든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무너진 정동진이 다음 세대에도 여행의 종착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훨씬 객관적인 눈으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물을 것이다. 모래시계 세대는 다 지나갔느냐고.

서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유로스타 英 워털루역 '투명지붕' 설계▼

근대적 의미의 첫 철도는 1830년 영국의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시속 50㎞에 이르는 기차의 속도는 당시로서는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당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했다. 기차역은 이 위대한 업적에 걸맞게 가장 위대한 양식이어야 했다.

건축가들이 본 가장 위대한 건축양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것이었다. 기차역은 그런 고전적인 모습을 갖춰 나갔다. 여행이 이국적인 향취를 불러와야 한다고 믿는 건축가들은 이집트 신전 모양의 기차역을 제안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기차역이 갖출 역사적 양식보다 기술적 진보에 관심을 갖는 건축가들이 등장했다.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기차역을 보수하면서 건축가들은 과거의 형식을 참조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역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넓은 공간을 기둥 없이 덮느냐 하는 것은 역의 건축적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영국과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기차, 유로스타의 런던쪽 기차역인 워털루역은 최근 세워진 기차역 중 가장 주목할만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건축가가 도전한 숙제는 가장 투명한 재료를 가장 경제적으로 조합하여 가장 넓은 공간의 지붕을 덮는 것이었다. 이 숙제를 풀어낸 건축가의 도구는 역사적 형식의 재현이 아니고 기술적 실험이었다. 기차의 정신은 기술적 성취에 있다고 믿는 건축가는 바로 그 정신으로 건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환한 공간은 자연스럽게 여행의 설렘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산업혁명을 이룬 기술적 진보가 영국의 전통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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