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동물의 몸짓부터 사람의 언어까지 영어로 귀결되는 의사소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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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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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박수철·유수아 옮김/312쪽·1만8000원·21세기북스

이 책은 언어학의 범주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분야를 다룬다. 말과 문자로서의 언어뿐 아니라 페로몬(개미) 몸짓(벌) 초저주파(박쥐 코끼리 고래) 초음파(곤충 돌고래)는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기계어와 수백 년 뒤의 미래어까지 아우른다. 따라서 이 책이 말하는 언어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의사소통 수단 일반을 지칭한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사소통이 어떤 방식과 어떤 계통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자기 행성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듯 썼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책의 서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대상 영역을 좁혀가는 것이다. 동물-영장류-인간-어족-주요 언어를 거쳐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언어인 영어로 귀결되는 트랙이다. 둘째는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의 발전과정을 계통발생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다. 유인원과 인간 뇌 용량의 대형화-발성기관의 진화-인류의 이동-언어의 분화-국어의 탄생 그리고 세계화로 인한 언어통합의 요구와 세계 단일어로서 영어로 이어지는 트랙이다.

두 개의 트랙 모두 귀착점은 영어다. “현재 인터넷 자료의 80%가 영어로 작성돼 있다”, “영어를 선택해 번영할 것인지 영어를 무시해 도태될 것인지 강제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형편이다”, “24세기 후반에는 지구에 영어가 세계 유일의 언어로 군림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저자는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 소장이다. 소수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라지만 역시 영미권 주변부 언어학자답다. 언어다원론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한다면 영어패권론자다운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옴 직하다.

이런 점은 한국어에 대한 관점에서도 확인된다. 영어가 속한 인도유럽어에 대해선 상세한 가계도까지 보여주는 반면 한국어에 대해선 ‘일본어와 함께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지만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여기까지는 언어학계의 일반인식이란 점에서 과히 탓할 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의 주요 계보를 6개 파로 나누면서 한국어나 일본어를 중국어파의 아류로 다루는가 하면 폴리네시아어파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다룬 것은 심하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15세기에 서양 알파벳을 접한 뒤로는 한글이라는 독자적인 알파벳을 창안했다”며 한글이 서양의 영향 아래 창제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이런 서구중심주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어의 지역어였던 영어가 왜 세계어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통찰은 음미해볼 만하다. 모국어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언어순화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외국 어휘를 차용하면서 모국어와 차별화된 뉘앙스나 사회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언어생태계를 풍부하게 가꿔냈기 때문이란 통찰 말이다. 이 책이 소수언어의 보존을 위한 언어다원주의가 일반화되기 전인 1999년에 발표됐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읽어야 할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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