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영 목판화는 따뜻하다.소재들도 익숙하다. 나무 꽃 구름 모양 등 주변에서 자주 보아온 것들이다.
9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사비나에서 열리는 개인전 ‘몽환(夢幻)의 뜨락’은 편안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출품작 ‘야상곡(NOCTURNE) 9901’의 주조는 초록색이다. 화면위에는 나무줄기와 가지들이 뻗쳐 있고 나뭇잎과 꽃잎을 닮은 문양도 흩어져 있다.
작가는 처음에 어두운 색을 칠한 다음, 점차 밝은 색을 그위에 겹쳐 찍었다. 검은 색 부분은 처음에 칠한 다음 다시 칠하지 않은 부분이다. 이 작품은 10번 이상을 겹쳐 찍은 것이다. 화면은 깊은 곳에서부터 배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같은 효과로 작가는 관람객을 안락한 감성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논리적으로 상관관계가 없는 각종 무늬들이 자유롭게 펼쳐진 것도 보는 이를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원근법도 무시되고 있다. 편안한 공간이다.색에 비해 그림의 형태는 단순하다. 이는 판화의 특징인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판화의 한계도 떠올리게 한다. 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현방식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작가가 이같은 점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