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불속에서 철학을 건지다…‘소방관이 된 철학 교수’

  • 입력 200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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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맥클러스키
프랭크 맥클러스키
◇소방관이 된 철학 교수/프랭크 맥클러스키 지음·이종철 옮김/293쪽·1만 원·북섬

“내가 그저 철학 교수로만 살았다면 소방관 활동을 하며 찾은 이 모든 지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소방관들은 더는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다. 매일 영웅적인 삶을 살면서도 영웅 의식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주변을 사랑하고 배려하면서도 매 순간 냉철해야 한다. 철학 이론은 관념적일 수 있지만 불의 세계는 진짜다. 화재 현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그래서 어떤 관념이나 허위도 개입할 틈이 없다.”

미국 뉴욕 머시대에서 철학 교수로 근무하던 저자는 서른네 살이 되던 1988년 어느 날, 힘든 결단을 내린다. 뉴욕 외곽의 마호팩 펄스 소방서에서 자원소방관으로 일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소방관의 길로 뛰어든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12년 동안 낮엔 철학 교수로, 밤엔 소방관과 구급차 운전자로 치열하게 살았다.

이 책은 그 12년 삶의 기록이다. 절체절명의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건 소방관 활동 경험이 긴박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은 삶의 통찰과 철학적 사유가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철학 교수에게 소방관의 길은 위태로움과 험난함 그 자체였다. 우선 “책상물림이 무슨 소방관이냐”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다. 높은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야 하는데 그는 고소공포증 환자였고, 연기 가득한 실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는 폐소공포증 환자이기도 했다. 사다리 들어 올리는 법, 산소통 사용하는 법, 지혈법과 심폐기능 소생술을 배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혹독한 훈련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불 속으로 뛰어들던 날, 그는 불길과 연기를 보곤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머뭇머뭇하다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걷어 차이고 나서야 겨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현장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저자가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와 통찰에 있다. 소방 작업은 호스로 물을 퍼붓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그런데 그건 자신과 동료 소방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저자가 터득한 통찰과 사유는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게 이어진다.

“소방관은 철학 교수처럼 관념에 대해 두 번, 세 번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들은 늘 삶이 저울추에 매달리는 순간에 대비해야만 한다.”

“불꽃이 넘실거리는 곳에서 나에 관한 참된 진리를 배웠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불 속에선 모두 평등하다. 불은 위대한 평형 장치다. 뜨거워지면 가슴속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

소방관이 된 철학 교수의 삶 자체도 독특하지만 책 곳곳에서 만나는 소방 철학의 세계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체력의 한계 때문에 자원소방관을 그만두고 지금은 철학 교수로만 일하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소방관으로서 나는 최대한 빨리 불을 끄려고 애썼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나는 지금 젊은 영혼들의 불꽃이 오래오래 타오르도록 돕고자 한다.” 원제 ‘Thoughts on Fire’(2002).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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