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우리 곁을 울리는 ‘일그러진 세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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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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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 3편 뮤지컬-연극무대 잇달아

오늘을 사는 청춘의 삶을 무대 위에 담아낸 뮤지컬 ‘퀴즈쇼’.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오늘을 사는 청춘의 삶을 무대 위에 담아낸 뮤지컬 ‘퀴즈쇼’.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퀴즈쇼’ ‘크리스마스 캐럴’ ‘오빠가 돌아왔다’ 등 소설가 김영하 원작의 작품이 잇따라 공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영상문법에 더욱 충실한 그의 작품이 영화보다 공연 쪽에서 먼저 각광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0대와 20대, 3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지닌 ‘지금 여기’의 고민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퀴즈쇼’(박칼린 연출)는 그가 2007년 발표한 동명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의 20대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조명하면서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만 요구하는 경쟁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주인공은 유일한 혈육이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취업전선에 내몰린 20대 후반의 우아한 대학원생 민수(이율).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한 채 해외유학을 준비 중이던 그가 전 재산 40여만 원을 들고 마주한 현실은 매섭기만 하다. 경쟁사회 탈락자들의 마지막 비상구로 전락한 고시원, 시간당 4000원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비인간적 처우를 견뎌야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온갖 ‘스펙’으로 중무장한 취업전사들과 검투사처럼 생존전투를 펼쳐야 하는 취업전선…. 이런 사막과 같은 현실에서 사이버공간은 민수에게 오아시스와 같다.

롱맨(long man)이란 아이디로 인터넷 퀴즈동호회에서 활약하던 민수는 결국 지하세계 퀴즈풀이 프로선수로 스카우트된다. 그 공간은 언뜻 민수와 같은 룸펜 지식인의 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식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계는 현실보다 더 추악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민수는 그곳에서 결국 롱맨(wrong man)이 되고 만다. 4만∼6만 원. 02-577-1987

‘퀴즈쇼’가 앙상한 20대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면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개막한 연극 ‘크리스마스 캐럴’(연출 박정석)은 기름기 낀 30대의 초상을 담아낸다. 주인공 영수(이준호)는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결혼해서 ‘애 낳고 집 사고 주말엔 가족과 이마트에 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대학동창 둘과 함께 독일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조진숙(김미옥)을 만나고 온 뒤 졸지에 살인용의자가 된다. 학창시절 ‘걸레’ 취급을 받던 진숙이 지적이고 세련된 여인으로 돌아온 것이 그들의 소시민적 삶을 못 견디도록 누추하게 만든 것이다. 1만 원. 02-3673-5580

연극열전3 선정작으로 내년 3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를 ‘오빠가 돌아왔다’(연출 고선웅)는 여중생 경선의 시각으로 처절한 가족해체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동명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알코올의존증에 폭력가장인 아빠, 그런 아버지를 폭력으로 제압하고 미성년 애인과 집 안에 살림을 차린 오빠, 이혼하고 집나갔다가 며느리 보겠다며 돌아온 엄마…. 사회고발 TV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다 어느덧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돼 버린 현실에 대한 블랙유머를 어떻게 육화(肉化)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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